“한국 사회의 병이 대부분 ‘말 병’입니다. 국회의원을 보면 다 말 병 걸린 사람들 같아요.”
산문집 ‘허송세월’을 낸 김훈(76) 작가는 24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이런 말 병은 듣지 않고 ‘말하기’에만 골몰한 탓에 생긴다는 것이 김 작가의 말이다. 그는 “우리 사회 언어의 병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라면서 “듣지 않고 내 말만 하니 소통이 되지 않고, 적대감과 극단의 언어만 쌓인다”고 말했다.
김 작가가 ‘허송세월’에서 “지난 70년 동안 이 불행한 분단의 시대를 지배한 것은 증오와 불신과 저주의 언어였다”고 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소통이 아니라 적대의 장벽에 동원된 언어로 인해 이제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려 민주주의의 존립이 불투명한 위기라는 것이다. 김 작가는 “말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자신의 정치·사회적 견해를 말할 때 교양 있는 언어로 말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듣기에 바탕을 둔 말하기로 소통을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강연회에 모인 300명 독자의 주된 관심사는 김 작가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으로 여기는 글쓰기였다. 글쓰기의 핵심을 ‘부사와 형용사 죽이기’라 말해 온 그는 이날도 “군더더기 없이 ‘뼈다귀’만 있는 문장”을 강조했다. 2022년에 낸 장편소설 ‘하얼빈’에서 “이토가 죽었다”라고 썼다가 부사 ‘곧’을 추가하고는 후회한 일화를 통해 “독자에게는 하찮겠지만 나로서는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시대의 문장가’라 불려온 그는 “쓸 수 있는 단어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 한 움큼밖에 안 남은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을 지나 여든에 가까워진 김 작가는 강연 끝 무렵에 노년 세대로서 청춘의 고민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젊은이들의 고통 대부분은 우리 세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반성하면서도 “젊은이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노작가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세대를 향해 ‘당신들이 책임져라’ 말해봐야 소용없어요. 우리는 금방 가니까. 여러분들이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부지런히 바라보고 생각하고 쓰는 김 작가다. 그는 거듭 당부했다. “주변을 정확하게 들여다보시는 젊은이가 되길 바랍니다. 기득권이 도덕적으로 양보하는 세상은 인류사에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주변의 문제를 잘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요구하고, 들이받아서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몰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