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특검법'이 25일 국회 재의결 끝에 다시 폐기됐다.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째다. 국회 통과 법안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재차 본회의에 올렸지만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대통령 거부권→재의결→폐기'의 수순이 반복됐다.
야권은 특검법 폐기 직후 곧장 재추진을 예고했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과 국민적 요구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같은 법안을 세 차례나 밀어붙이는 건 오기로 비친다. 이 외에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윤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폐기된 여러 법안을 또다시 추진할 참이다. 야당은 거대 의석을 앞세워 법안을 퍼붓고 여당은 대통령을 엄호하려 가까스로 막아내는 대결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이날 재의결에서 재석 299명 중 찬성 194표에 그쳤다. 재적의원(300명) 과반 출석은 넘겼지만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200명) 찬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반대 104표, 무효 1표였다. 야당 의원들이 모두 찬성했다고 가정하면, 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힘(108석)에서 최소 4표가 이탈했다. 앞서 4일 본회의 표결 때와 비교하면 찬성은 5표 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장 입구에서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재의결 직후 야권이 규탄시위를 하러 퇴장하면서 본회의가 잠시 중단되자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진행이 개판"이라고 고성을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여야는 22대 국회에서도 무한 반복의 대치 구도에 갇혔다. 민주당은 21대에서 폐기된 특검법을 원안 그대로 추진했고, 의석수를 등에 업고 힘으로 법안을 들이밀었다. 이 과정에서 여당을 설득하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두 차례 폐기된 법안을 예고한 대로 다시 추진할 경우, 법안을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여론의 공감대는 아랑곳없이 특검법의 위헌성을 강조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야당과 접점을 찾기 위해 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을 주장하는 의견은 배신 행위로 뭉갰다.
여야의 힘겨루기에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3주 만에 다시 등장했다. 민주당 주도로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가운데 방통위법을 먼저 본회의에 상정하자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맞섰다.
다만, 24시간이 지나면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표결로 끝낼 수 있기 때문에 법안 처리를 막을 수는 없다. 민주당은 4개 법안을 차례로 통과시킬 방침이어서 24시간씩 4박 5일간 본회의가 지속될 전망이다. 방송4법도 윤 대통령이 재차 거부권을 행사하면 앞서 채 상병 특검법처럼 재의결 절차를 거친다.
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보고됐다.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내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직무가 정지된다. 이 부위원장은 탄핵을 피하기 위해 26일 자진사퇴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경우 현재 이 부위원장 1인체제인 방통위에 상임위원이 아무도 없는 초유의 사태를 맞는다. 다만, 윤 대통령이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고 대통령 추천 몫 상임위원 1명을 채운다면 민주당이 반대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선임 절차를 진행할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