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르포] 위메프 본사서 '날밤 꼴딱'... 대표에게 직접 환불받은 열혈고객들

입력
2024.07.25 09:21
위메프 여행 상품 구매한 소비자들 
여행사 '모르쇠'에 본사 직접 방문
현장서 명단 접수… 새벽부터 환불


“3차 환불 대상 명단 부르겠습니다.”

25일 새벽 3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위메프 본사에 들어선 재무팀 직원에게 수백 개의 눈동자가 쏠렸다. 위메프에서 결제 금액만 수 백만 원에서 수 천만 원에 이르는 여행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이었다. 정산·환불 지연 사태에 불안해진 이들이 전날 오후부터 잇따라 항의 방문에 나서 이곳은 북새통을 이뤘다. 성난 소비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류화현 위메프 대표가 자정 넘은 시간 현장에 나타나 고개를 숙였고, 이날 새벽 내내 수작업으로 환불이 진행됐다.

쏙 빠진 여행사, 위메프와 '직접 승부' 나선 소비자

한국일보가 25일 새벽 강남구 삼성동 본사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모두 진이 빠지고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태였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위메프에 등록된 투어 상품을 구매했는데, 정산금 지급이 미뤄지자 여행사들은 투어 진행 불가를 통보하며 "환불은 위메프에 직접 하라"고 선을 그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위메프 측이 전날 오전 본사를 찾아와 항의한 70여 명에게 환불을 해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후부터 본사 건물 1층에는 여행 결제 금액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오후 7시쯤 30명 정도였던 규모는 4시간 만에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직장에서 바로 퇴근해 서류 가방을 든 이부터, "늦은 시간이라 대신 봐줄 사람이 없어 데리고 왔다"며 졸음에 눈을 비비는 아이를 다독이는 젊은 부부도 여럿 보였다.

그러나 환불은 커녕 응대 자체가 없었다. 소비자들이 "책임자는 언제 오냐"며 거세게 항의하자 1층 로비 보안직원은 임시 서류에 결제자명이나 예약번호, 계좌번호 등을 적도록 안내했다.

이후 4시간가량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온 소비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에 떨었다. 서울 성북구에서 온 조구영(59)씨는 "(환불 지연 사태에 대한) 뉴스를 보고 오늘 점심 사이트에 접속해봤더니 1,000만 원을 주고 잡은 하와이 투어 예약 내역이 뜨지 않아 심장이 내려앉았다"며 "(위메프에) 문의전화를 400통 넘게 걸었는데도 응답이 없어 퇴근 후 직접 왔다"고 했다. 성남시에서 온 정연주(40)씨도 "시중 투어보다 70만~80만 원 싸서 위메프로 예약했다가 300만 원을 잃게 생겼다"며 "즐겁게 놀려고 잡은 여행이었는데 자책을 많이 했다"고 울먹였다.

해 뜰 때까지 '수기 환불' 진행

이날 자정을 넘어 0시 30분쯤 류화현 위메프 대표가 현장에 도착했다. 류 대표는 "피해자 구제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가장 클레임이 많은 여행 상품의 경우 PG(결제대행)사와 논의해 내일 오전 중 신용카드 결제를 취소하도록 합의했으니 믿어 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돈을 떼어먹을지 어떻게 믿고 집에 가냐'는 항의가 쏟아지자 류 대표는 "거둬 둔 서류를 바탕으로 순차적으로 현장 환불도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후 오전 2시부터 재무팀 직원이 피해자를 20명씩 호명하면 사무실에서 개인정보 확인을 거친 뒤 환불액수를 일일이 입력해 송금했다. 이날 오전 3시쯤 처음으로 입금 알림이 울리자 피해자들 사이에선 안도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새벽 시간이었음에도 더 많은 피해자들이 본사로 몰려들었다. 일단 서류를 직접 접수해야 한시라도 빨리 금액을 회수할 수 있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대구에서 고속 열차를 잡아타고 온 30대 조모씨는 "새벽 1시 30분에 서류를 접수하고, 6시쯤 970만 원을 돌려받았다"며 "직원들이 나와있을 때가 아니면 환불을 받지 못할 것 같아 서둘렀다"고 말했다.

새벽에 시작된 환불 작업은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됐다. 새벽 3시쯤 본사에 도착한 한 소비자는 "언제 순서가 돌아올 지 몰라 일단 휴가를 쓰고 기다리기로 했다"며 "비슷한 처지로 꼬박 밤을 샌 사람만 수백 명"이라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