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작전하듯 방심위원장 연임... 최소한의 원칙도 없나

입력
2024.07.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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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임기 종료로 퇴임한 다음 날 다시 위원장으로 호선됐다. 예고도 없이 직원들이 퇴근을 한 시간에 문까지 걸어 잠근 채 밀실에서 기습으로 이뤄진 의결이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급하고 떳떳하지 못해서 007 작전하듯 ‘도둑 의결’까지 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방심위 임시회의는 그제 오후 6시 50분께 열렸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시각이었다. 회의 시작 10분 전에야 소식을 접한 노조 측이 부랴부랴 회의가 열리는 서울 목동 방송회관 19층으로 올라갔지만 출입문 전체가 꽁꽁 잠겨있었다고 한다. 방심위는 내부 기본규칙에 따라 중요한 정책 사항의 경우 7일 전, 일반적인 사항은 2일 전 회의 공지를 하도록 하고 있지만 사전 공지는 전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추천 몫 방심위원으로 류 위원장과 강경필 변호사, 김정수 국민대 교수를 위촉한 사실이 알려진 것도 회의 직전이었다. 6기 방심위원 3명이 새로 위촉되자마자 다음 달 5일까지 임기인 여권 추천 5기 방심위원 2명과 함께 류 위원장을 새 위원장으로 기습 호선한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 추천 위원만으로, 그것도 이전 기수 위원까지 합세해 새로운 위원장을 뽑은 것이다. 회의 뒤 급히 빠져나가려던 류 위원장은 가로막는 노조원들을 피해 차도로 뛰어들어 택시를 잡아타고 떠나는 촌극까지 연출했다. 기습에 밀실, 합의제 원칙 훼손, 규정 위반 등 편법이란 편법은 총동원된 것이다.

류 위원장은 지난해 9월 가족과 지인들을 동원해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을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을 심의해달라고 ‘청부 민원’을 한 의혹의 중심에 있다. 그래 놓고 제보자 색출에만 매달렸다. 정권 비판 보도에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무더기로 법정제재를 가했다. 이런 인사를 방심위원장에 다시 앉히는 건 더 집요하게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선전포고로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류 위원장은 기습 의결 이유에 대해 “방심위는 단 하루도 비울 수 없어서”라고 했다. 정부 비판 보도는 하루도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리는 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중앙행정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에 이어 민간독립기구인 방심위마저 정권의 하청기구로 고착화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