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승소 '0'... "급발진 규명,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잡아야"

입력
2024.07.29 04:30
24면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리포트입니다.

최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16명의 사상자를 낸 자동차 역주행 사고 이후 자동차 급발진 및 고령 운전자 사고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68세 차량 운전자는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고”라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운전자 과실로 인한 사고로 보인다는 감정 결과를 내놓으면서다. 아울러 정부 차원의 각종 대책도 진행되는 상황이다.

사실 지난 40여 년간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운전자가 단 한 건도 최종 승소한 경우가 없을 정도로 운전자가 극히 불리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예방, 발생 원인, 대처, 후속조치 등 여러 면에서 불안한 상황이 이어져왔다.

자동차 급발진이란, 전자 제어 엔진과 자동 변속기라는 특성이 포함된 차량이 정차 중인 상태에서 운전자 의지와 관계없이 급가속 발진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지난 1980년 초 기계식 중심의 엔진에 전자 제어 기능을 넣으면서 발생하기 시작한 현상이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공포의 자동차 움직임이지만, 아직도 예방 장치는 없는 실정이다.


급발진, 해외 사례는?

미국의 경우, 법적 구조가 소비자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의심 사고가 발생해 소송에 돌입하면, 차량 제작사가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소송이 진행된다는 특성이 있다. 즉 소송 중에 소비자 측이 제기하는 각종 의구심을 제작사가 밝히지 못하면,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아도 재판부가 합의를 종용해 보상을 받는 구조다.

유럽은 전체 자동차 중 절반 이상이 디젤 엔진인 데다, 상당수 차량이 자동 변속기가 아닌, 수동 변속기를 장착했기 때문에 급발진 사례가 매우 적다. 디젤 엔진은 전자제어인 경우에만 약간의 급발진 확률이 발생하고, 수동 변속기는 운전자가 동력을 직접 이어주고 끊어주는 만큼 급발진이 아예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증된 사건이 아닌 이상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사례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에 등록된 자동차 약 2,600만 대 중 매년 정부에 보고되는 급발진 의심 사고가 30~100건 정도지만,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자동차 급발진 연구회’는 이 수치보다 20배 정도 더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 중 80~90%는 운전자 실수로 판단하고, 나머지 10여 %(약 300건)가 급발진 사고로 추정된다.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매일 1건가량 발생하는 셈이다.

문제는 실제 급발진이 발생해도 운전자가 보호받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국내 제조물책임법(PL법)에 따르면, 운전자가 직접 자동차의 결함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사고 이후 국과수가 제출하는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는 운전자에게 극히 불리하게 작용해 ‘차량 제작사의 면죄부’라 할 정도다. 그래서 운전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40여 년간 운전자는 '100% 패소'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자동차 사고기록장치의 데이터를 활용해 시시비비를 가린다. 이 사고기록장치는 EDR(Event Data Recorder)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제작사가 차량 에어백이 터지는 과정을 보기 위해 장착한 소프트웨어가 언젠가부터 사고기록장치로 둔갑한 사례다. 이 장치는 일반 사고 발생 시 증거로도 활용되는 등 신뢰성이 매우 높은 중요한 장치로 의미가 크다.

하지만 급발진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엔 얘기가 다르다. 급발진은 자동차의 두뇌인 전자제어장치(ECUㆍElectrinic Control Unit) 이상으로 발생한 사고다. 그런데 급발진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이 전자제어장치를 통해 기록된 사고기록 장치의 데이터를 신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급발진이 발생하면 자동차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먹통이 되는 만큼 데이터도 신뢰할 수 없다. 이는 정신질환자나 치매환자의 증언이 사건ㆍ사고의 증거로 활용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판부는 지난 40여 년간 이 사고기록장치의 데이터를 사실상 맹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월 진행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재연 시험’ 결과를 주목할 만하다. 2022년 12월 급발진 의심 사고로 이도현(12)군이 세상을 떠나고 운전자였던 할머니도 크게 다쳤는데, 사고 당시와 똑같은 거리ㆍ장소에서 똑같이 시연을 한 것이다. 법원이 선정한 전문 감정인의 참관하에 이뤄진 이 시험에서 변속 패턴이 실제 주행에서 나온 수치들과 맞지 않았다. 실제 속도와 변속 패턴 설계 자료상 예측 속도의 일치율이 10~20%에 불과했고, 속도 자체도 적게는 시속 4~7㎞, 많게는 50~80㎞까지 차이가 났다. 사고기록장치의 데이터가 실제 운전자의 운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자동차 급발진의 원인은?

지난 2010년대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으나 결국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나마 미국에서 소송 중에 자동차 소프트웨어의 오류를 활용해 자동차 급발진이 발생한다는 것을 일부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즉 자동차 급발진의 발생 원인은 전자제어 이상, 알고리즘의 이상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사고 이후에는 흔적이 남지 않아 100% 정확하게 재연이 불가능하다는 특성이 있다. 국과수가 차량을 검사할 때 오직 ‘사고기록장치’에만 의존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급발진 소송이 걸리면, 운전자는 대부분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인다. 법규도 불리하고 실제로 급발진이 발생해도 증거가 없어 한계가 명확하다. 그나마 급발진 상황이 오래 지속된 사건의 경우, 주변 블랙박스 영상을 토대로 각종 상황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입증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고 상황이 5~6초 이내로 끝나는 사고의 경우, 운전자가 아무리 급발진 사고임을 주장해도 이를 확인하거나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다. 그리고 100% 운전자 과실로 판정된다. 물론, 사고 직후 운전자는 패닉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무작정 “자동차 급발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급발진 대처법은?

대처법은 △예방을 통한 확률 감소 △급발진 발생 시 운전자 대처법, 그리고 △사후 조치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급발진 예방 장치는 현재 글로벌 시장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소프트웨어적으로 강화하는 방법이 진행 중이다. 최근 일부 제작사는 자동차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전체 시스템을 차단하는 일명 '셧 다운 프로그램’(킬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급발진 확률을 감소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급발진이 발생했을 경우, 대처법이 있긴 하지만 사실 한계가 크다. 일각에서는 전자브레이크를 활용하거나 두 발로 브레이크를 세게 밟기, 중립 기어 활용 등 다양한 방법을 내놓고 있다. 또 미국 컨슈머리포트는 '브레이크는 한 번에 밟으면서 기어는 중립에 놓고 시동을 끄는' 세 가지를 한 번에 하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문가인 필자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더욱이 급발진이 발생하면 운전자는 패닉 상태에 빠지는데, 앞서 언급한 방법들을 이성적으로 떠올린 뒤 실행에 옮기기란 어렵다.

따라서 다른 방법을 떠올리기보단 ‘차량을 세워야 한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도심지에는 가로등, 가로수, 전봇대 등 수직 구조물이 많은데, 여기에 차량을 부딪치면 에너지가 집중돼 탑승자 부상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그러므로 길가에 주차된 빈 차량에 부딪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자동차 엔진룸과 트렁크룸은 인간이 만든 구조물 중 에너지 분산 구조가 가장 뛰어나다. 그래서 부딪칠 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감소시키고 중상 가능성을 줄인다. 고속도로 등 교외에서는 가드레일, 벽 등의 옆면에 부딪쳐 차량 속도를 감속시키는 방법이 있다. 결국 무조건 차량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사고 이후에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전무하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시중에 판매 중인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권장한다. 운전자 발 부위를 찍는 블랙박스다. 이 영상은 법정에서도 직접 증거로 활용할 수 있어 자신의 결백이나 실수, 자동차의 결함 등 다양한 원인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급발진 의심 사고는 단순히 운전자 과실로만 몰아갈 것이 아니다. 특히 소송 시 현재의 ‘기울어진 운동장’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앞으로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법적ㆍ제도적 개선은 물론, 공식적인 재연 시험 등 소비자 중심의 다양한 구제 방안을 기대한다.

김필수 교수는?

동국대 전기공학과에서 전자제어 전공으로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 1996년부터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사)한국전기차협회 회장, (사)한국자동차튜닝산업협회 회장, (사)한국PM산업협회 회장 등 사단법인 10여 개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최근 가장 민감한 사안인 자동차 급발진연구회 회장도 맡고 있다.

중앙정부 및 지자체 자문위원, 방송 MC 등 다양한 활동 중이며, 칼럼 6,000여 편, 논문 150여 편, 저서 50여 권 등 다양한 저술활동도 겸하고 있다. 아울러 미래 모빌리티 산업과 기술적 진보 등을 중심으로 정책과 산업,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융합모델도 진행 중이다.



김필수 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대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