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재개된 삼성전자 노사 임금협상이 결렬됐다. 지난 8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총파업 돌입 이후 보름 만에 대화가 이뤄졌지만 임금 인상률 등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노조는 사측에 "29일까지 안건(협상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끝까지 가겠다"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시작된 교섭은 8시간 30분 동안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다가 오후 5시 30분쯤 종료됐다.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노사 간 입장 차이가 너무 커 결과 도출 없이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사측이 교섭에서 논의할 안건조차 정리하지 않은 채 빈손으로 교섭에 임했다고 주장하며 "어이없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전삼노는 △기본 임금 인상률 3.5%를 포함한 평균 임금 인상률 5.6% △노조 창립휴가 1일 보장 △초과이익성과급(OPI)과 목표달성장려금(TAI) 제도 개선 △노조 조합원 파업 참여에 따른 경제적 손실 보상 등을 요구 중이다. 반면 사측은 임금 인상률 5.1%를 고수하고 있다.
전삼노는 29일을 협상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총파업이 시작된 지 꼭 3주로 되는 날로, 반도체 생산공정(TAT) 기간이 3주인 점을 고려했다. 노조는 사측이 교섭에서 논의할 안건과 협상안을 기한 내에 가져오지 않으면 곧장 무기한 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사측이 납득할 만한 안건을 제시하면 31일까지 3일간 집중 교섭을 벌일 방침이다.
다만 협상이 쉽게 풀릴지는 미지수다. 당장 사측은 노조의 총파업 연장 경고에도 "생산라인이 버틸 수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파업으로 기흥캠퍼스 8인치 반도체 6~8번 생산라인 설비 가동률이 18%까지 떨어졌다는 노조 측 주장과 상반된다.
노조는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을 강조하며 회사의 양보안 제시를 유도하는 분위기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삼성전자 파업에 대해 보도하고 있는데 대외 이미지 실추를 어떻게 감당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제대로 된 품질 검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제품이 생산되고 있어 품질 문제가 분명히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측은 "최고결정권자에게 품질 문제 발생 가능성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 것 같다"고 의심을 내비쳤다.
노조는 강경 투쟁 계획으로도 회사를 압박했다. 이 부위원장은 "(최종 협상 전까지) 파업 동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며 "조합원들은 파업에 적극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노조원 확대 작업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삼노 조합원은 약 3만4,700명으로 삼성전자 전체 직원 12만5,000명의 27% 수준이다. 이들 대부분이 삼성전자 주력 사업인 반도체(DS) 부문 소속으로 알려졌다.
노사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파업이 길어지면서 삼성전자 글로벌 경쟁력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일본 한국 대만 등 반도체 강국들의 산업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상황에서 회사 신뢰도와 생산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번 파업에는 반도체 부문 근로자가 다수 참여하고 있어 제품 완성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대만 TSMC에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내줬고, 인공지능(AI) 분야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선 국내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에선 1위 TSMC와 50%포인트 넘는 격차로 뒤처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