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관악구 당곡초등학교에선 여름 방학식이 열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우중충한 날씨에도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 얼굴은 방학에 대한 기대감으로 밝았다. 학부모 30여 명도 활짝 웃으며 배웅했다. 그러나 자녀들이 교문 안으로 들어가자 학부모들은 금세 비장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근조 화환에 쓰이는 흰 띠 200여 개가 죽 걸린 학교 담장을 등진 채 준비해 간 손팻말을 들었다. 흰 띠와 손팻말엔 '아이들 안전담보 결사반대' '애들이 실험 대상이냐' '모듈러가 좋다고? 현실은 닭장이다'와 같은 문구가 담겼다.
학부모들이 4주째 이 같은 '등교 시위'를 하고 있다. 교육부의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업 때문이다. 지어진 지 40년 이상 지난 학교를 첨단 시설을 갖춘 친환경 건물로 일부 리모델링 또는 개축하는 사업으로 당곡초는 2021년 선정됐다. 1974년에 세워져 쉰 살이 된 학교를 쾌적하게 바꿔준다는데 부모들은 왜 분노하는 걸까.
당곡초 건물 면적은 약 3,510㎡(1,061평)로 학교치고 작은 편이다. 서울시교육청 설계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1,017㎡(307평)짜리 다목적 강당만 남기고 내년 1월부터 모두 공사에 들어간다. 공사가 진행되는 3년간 운동장도 사용할 수 없다. 아이들은 1층당 10개 교실씩 3층 높이로 만들어질 조립식 교실(모듈러)에서 지내야 하는데, 이 교실과 공사 현장을 분리하는 가벽의 거리가 3.5m 정도에 불과하다. 학부모 A씨는 "진동이며 소음이며 안 느껴질 리가 있겠냐"고 성토했다.
사업을 추진하는 시교육청과 반대하는 학부모 사이에 끼인 당곡초도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당곡초는 2021년 6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토론회 참여 안내문 등 가정통신문을 17차례 발송했고, 학부모 대상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사업 참여 전 실시한 투표에서는 조건부 동의를 포함해 80% 가까운 학부모들이 찬성 의견을 냈다. 그러나 타당성 검토부터 재산관리계획 등 여러 절차를 밟는데 시간이 걸려 올해 3월에야 공사 계획이 하달되며 사달이 났다. 학부모들은 "투표 당시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 중 절반은 졸업했다"며 "다시 투표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업이 학부모 반발에 부딪힌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1년 9월 영등포구 대방초와 강남구 언북초 등 9개 학교 학부모들이 뭉쳐 '사업 철회'를 밀어붙였고, 시교육청이 수용하기도 했다. 서울 내 해당 사업 대상 학교는 첫 추진 당시 213곳에서 올해 6월 기준 89곳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강동구의 둔촌초 등 큰 마찰 없이 공사가 진행되는 곳도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진통이 이어질 수 있다. 사업에 선정된 학교 가운데 70개 가까운 곳은 아직 공사 계획이 마련되지 않았는데 막상 삽을 뜨려고 하면 학부모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시교육청 담당자는 "그렇다고 매년 투표를 진행하거나 노후화한 학교를 그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서도 "학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