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야, 나와봐~.”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동물자유연대 보호소 ‘온센터’. 활동가들의 부름에도 ‘백호’(4세 추정∙혼종견)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문 앞에 잠시 얼굴을 드러내다가도, 낯선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자 황급히 모습을 감췄습니다. 견사 안으로 들어간 뒤, 백호가 적응하기를 잠시 기다리고 나서야 백호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백호는 아직 두려운 게 많은 듯했습니다. 손을 쓰다듬기 위해 손을 들어도 움찔하기 일쑤였고, 간식을 주면서 가까워지려 해도 한참을 망설이다 손바닥에 놓인 간식만 먹고는 잽싸게 거리를 뒀습니다. 동물자유연대 조영연 동물관리국장은 “경험해 보지 않은 것들은 일단 경계부터 한다”며 “그나마 온센터에 입소하고 1개월 정도 활동가들이 먹이를 주면서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간혹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잠시 냄새를 맡다가도 조금만 움직이면 백호는 곧 도망가 버렸습니다. 온센터에 오기 전, 백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무려 121일. 백호의 구조에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경북 안동시의 한 산골 마을에서 발견된 백호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처참했습니다.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가 목 깊숙이 파고든 상태였습니다. 강아지 시기 누군가 백호의 목에 채웠던 목걸이가 자라면서 목을 조이다 못해 살점을 파고들어간 겁니다.
그러나 처음 백호를 마주한 동물자유연대 구조팀은 구조가 이렇게 오래 걸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구조팀을 이끈 송지성 위기동물대응팀장은 “먹이를 줄 때 반응이 좋은 걸 보고 포획틀만 잘 설치하면 하루만에 구조가 가능할 거라고 판단하고 현장으로 향했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구조팀은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폭우가 내리며 백호의 모습을 직접 보기조차 어려웠던 겁니다. 비가 그치고 나서도 백호는 구조팀이 설치한 포획틀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본 송 팀장은 ‘백호가 참 예민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감은 현실이 됐습니다. 백호는 그 뒤로도 구조팀이 준비한 포획틀을 기가 막히게 피해 다녔습니다. 구조팀은 백호의 이동 동선을 최대한 많이 파악한 뒤 포획을 시도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백호와의 심리전이 길어질수록 구조팀은 더욱 초조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송 팀장은 “구조가 몇 차례 실패하면 구조 동물의 경계심도 높아진다”며 “더 예민해진 백호가 산속 깊이 숨어들기 전에 구조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더군다나 백호는 예민한 청각과 숨을 장소들을 확보해 놓았기에 구조팀 입장에서는 더욱 불리했다고 합니다.
결국 구조팀은 많은 인력을 동원한 방법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동물 관련 학과 대학생들로 조직된 자원봉사자들과 SBS ‘TV동물농장’ 진행자 토니안 씨와 시청자들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예민한 백호는 결국 촘촘하게 좁혀진 구조망을 벗어나 산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백호가 더 예민해지기 전에 결국 경계심을 풀기 위해서라도 잠시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 내려갈 때마다 3박 4일, 그렇게 7번을 서울과 안동을 오간 구조팀. 철수하면서도 걱정을 거두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송 팀장은 “목줄 외상견은 패혈증으로 언제든 갑자기 목숨을 잃을 수 있다”며 “백호의 부어오른 얼굴만 보면 매우 위험한 단계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구조 현장에서도 백호에 대한 걱정을 놓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개월을 애먹이던 백호의 구조는 의외로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백호가 인근 민가의 창고 근처에 숨어있었던 사실을 알아낸 겁니다.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이번에 실패하면 더는 백호를 잡을 방법은 없다고 여긴 겁니다. 최후의 방법을 모색하던 구조팀은 결국 지자체 보호소의 도움까지 받아 뜰채로 백호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처음 구조팀이 현장을 방문할 무렵 근처 과수원에 걸려 있던 풋사과가 어느새 잘 익은 붉은 사과가 된 2023년 10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구조 이후 동물병원에서 회복에 전념하던 백호는 지난해 12월 온센터에 입주했습니다. 백호가 온센터에 들어오는 날, 구조팀도 자리에 함께 했다고 합니다. 목에 있는 상처가 아물고 얼굴의 부기도 가라앉은 백호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었다고 해요.
안타까움은 송 팀장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조 사연이 지난 12월 TV동물농장을 통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입양 문의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입양 희망자 중 백호와 함께 지낼 적임자는 없었다고 해요. 동물자유연대 조은희 온센터 홍보팀장은 “백호에게 맞는 환경이 아닌데도 호기심이나 단순히 불쌍하다는 마음만 갖고 입양을 신청하신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입양 신청자 대부분은 공동주택 거주자였습니다. 사회성이 좋은 대형견이라면 입양을 고민할 수도 있지만, 자극에 예민한 백호에게 맞는 생활 환경은 아니었다는 게 조 팀장의 설명입니다.
게다가 백호 역시 아직 가족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호소 입소 직후에도 이동장에 웅크려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 백호는 한 달 동안 아직 보호소 안에서 강아지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고 합니다.
백호를 만난 날에도 야외에서 다른 강아지 친구와 마주치는 교육이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백호는 강아지 친구에게 잠시 관심을 갖고 냄새를 맡다가도 이내 걸음을 돌려 줄행랑치기 바빴습니다.
목걸이에 고통받았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목줄을 매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목줄을 매려고 할 때 공격성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뒷걸음질 치면서 목줄을 피한 겁니다. 그런다고 억지로 목줄을 채우면 더욱 나쁜 경험을 심어주는 만큼 꾸준히 간식으로 좋은 기억을 심어주며 목줄 교육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한 가지 희망적인 점은 백호가 사람에게 느리게나마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다는 점입니다.
직접 만나본 백호는 수줍음이 강해 보였습니다. 어색한 사람, 강아지와의 관계에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가족을 만날 준비가 될 때까지, 방송 당시 모였던 관심과 애정으로 백호를 계속 지켜보는 게 어떨까요? 아마 백호도 조금 더 용기를 내 마음을 여는 시간을 좀 더 앞당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