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마로 수박 대표 산지 중 하나인 충남 논산시·부여군이 침수 피해를 입으면서 '수박 대란'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논산·부여 농가는 보통 5월쯤 파종해 7월 수박을 수확한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집중호우로 썩어버리거나 수분을 흡수해 당도가 낮아진 '비(非)상품' 수박이 늘어난 것이다. 논산 농가 관계자는 23일 "지난해 장마 때도 피해가 컸지만 올해가 더 심각하다"고 답답해했다. 일부에서는 수박 한 통에 4, 5만 원을 호가하던 2023년 여름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해 같은 수박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논산·부여를 뺀 대다수 수박 산지가 별다른 장마 피해를 입지 않은 데다 작황도 양호하기 때문이다. 수년째 장마에 따른 '금(金)수박' 사태를 경험한 대형마트 등 유통 업체들도 일찌감치 다른 산지를 개척하며 논산·부여발(發) 공급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물론 장마가 길어질 경우 전국적으로 수박 작황이 악화할 수 있는 만큼 안심하긴 이르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전문가들이 대란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는 장마 피해 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장마로 수박 침수 등의 피해를 입은 면적은 319㏊(헥타르)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장마와 태풍 '카눈'을 잇달아 겪었던 지난해 여름 피해 면적(1,032㏊)의 3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피해가 집중된 논산·부여의 수박 생산량 또한 전체 시장을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다. 지난해 7월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수박 물량 중 논산·부여 산지 수박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0.6%, 1.8%에 그쳤다. 충북 음성군(44.2%) 강원 양구군(26.3%) 경북 봉화군(10.9%) 등 ‘빅3’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음성, 양구 같은 주 출하지는 장마 피해가 크지 않은 데다 작황도 좋다"고 했다.
물론 도매 시장을 거치지 않고 산지에서 대형마트로 직행하는 수박 중에는 논산·부여 물량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대형마트에서 공급 충격이 클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전국적 유통망과 구매력을 가진 대형마트들은 비교적 발 빠르게 공급처를 늘리는 데 공들이고 있다. 이마트는 2주 전부터 상대적으로 비 피해가 적은 전북 고창군 노지 물량을 확대하고 지난주 양구의 노지 재배 수박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롯데마트 또한 양구나 봉화는 물론, 전북 무주군, 충북 단양군 등 장마 피해가 별로 없는 고산지 수박 물량을 추가로 사들이고 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2021년 이후 매년 장마, 태풍 영향으로 수박 생산이 감소하면서 값이 뛰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수박은 장마 전 수확해 저장해뒀다가 파는 게 불가능해 몇 년 전부터 최대한 많은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부여·논산의 전체 수박 시설 재배 면적은 전국 면적의 20.9% 수준"이라며 "중복, 휴가철 등 수요가 몰리는 대목에 일시적으로 값이 뛸 순 있지만 지난해 같은 폭등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했다.
다만 지금 대란이 없을 거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장마가 길어지며 다른 산지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김명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장마가 끝나고 다시 폭염이 시작돼도 수박 작황이 나빠질 수 있다”며 "수분을 머금고 있던 수박이 갑자기 높은 온도에 노출되면서 속이 부패하는 피수박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수박 작황과 관련된 변수가 너무 많기에 1, 2주 정도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