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이 김건희 여사 직접 조사를 특혜성 '출장조사'로 마무리한 것을 두고, 이원석 검찰총장이 분노를 감추지 않으며 '감찰부 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검찰 수뇌부' 갈등설을 무릅쓰고 이 총장이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을 공개적으로 질책한 것은 단순히 '총장이 패싱'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해석이 검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검찰총장이 비공개 소환에 부정적인 입장을 수차례 표했음에도 사실상 일선 검찰청이 총장 지시를 거부했고, 이 총장이 밝혀 온 '성역 없는 수사' 원칙까지 검찰 스스로 깬 것으로 비춰지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검찰 내에선 "총장이 충분히 화낼 만하다"거나 "수사팀 사정도 이해해 줘야 한다"는 평가가 분분하다.
22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최재훈)와 형사1부(부장 김승호)가 20일 김 여사를 서울 종로구 소재 대통령 경호처 보안청사에 불러 조사하기 전 이 총장에게 사전 보고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선 양측 이견이 없다. 현직 대통령 배우자를 헌정 사상 처음 조사하면서 검찰총장에게 사실상 '사후 통보'한 것이라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은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이 배제된 도이치모터스 의혹 조사만 정해진 상태여서 총장에게 사전 보고하기 어려웠고, 도이치 조사가 명품가방 조사로 자연히 옮겨갔는데 그 부분은 보안·경호 문제로 적시에 보고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검은 '명품가방 의혹 관련 조사 가능성을 따로 보고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사실상 대통령실과 사전에 조율을 끝낸 상태가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무보고의 이면엔 사실상 지시 거부도 있었다. 이 총장은 최근 이 지검장과 만날 때마다 '검찰청 소환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거나 '김 여사 측에서 비공개 조사를 이야기하면 사전 보고하고 상의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런 지시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 총장은 조사 소식을 뒤늦게 듣고 주변에 "이렇게 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BBK 특검 당시처럼) '꼬리곰탕'만 접대하고 수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차라리 조사를 안 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등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평소 이 총장이 밝혀 온 원칙과도 이어진다. 이 총장은 2022년 9월 16일 취임 후 첫 일성으로 "법집행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며 한비자의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는다)와 승불요곡(繩不撓曲·먹줄은 굽은 것을 따라 휘지 않는다)을 언급했다. 김 여사에게 주어진 '극비 조사' 특혜는 총장과 검찰의 약속이 동시에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이 총장의 걱정이다. 이 총장은 이날 출근길에도 "대통령 부인 조사 과정에서 (취임 당시 말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검찰 내부 평가는 미묘하게 갈렸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영부인을 투표로 뽑은 것이 아닌데,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반 국민에게 적용되지 않는 방식의 조사가 이뤄지면 어떻게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반면 한 차장검사는 "오랫동안 대면 조사를 이끌어내지 못하며 '봐주기 논란'이 일었던 사건을 어떻게든 매듭지으려다 나온 결과일 수도 있다"며 "이 총장과 이 지검장 모두 이해된다"고 말했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모두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의사는 분명한 만큼, 검찰 내부적으로는 이 총장이 지시한 조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다른 검사장급 간부는 "서울중앙지검이 대놓고 총장을 '패싱'하는 것이라면 문제겠지만, 일단은 중앙지검 얘기도 들어보고 사실관계를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