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과 혼돈의 25일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을 107일 남기고 용퇴를 결단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첫 대선 후보 TV 토론 이후 재점화된 '고령 리스크' 논란을 끝내 잠재우지 못했다. 지난해 '최고령 현역 재선 도전' 선언 이후 줄곧 완주 의지를 보였던 바이든 대통령을 후보 사퇴로 이끈 결정적 다섯 장면을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있어 '말실수'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한국 방문 시 윤석열 대통령을 "문 대통령"이라 부르는가 하면, 지난 5월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한국 대통령'이라 칭하기도 했다. 공개 석상에서 보이는 불안한 모습에 반대파는 물론 외신에서도 '치매설' 등 인지력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낙상 사고도 해마다 발생했다. 취임 첫해인 2021년 전용기 에어포스원의 계단을 오르다 세 번이나 발을 헛디디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듬해 자전거에서 내리다 균형을 잃기도 했고, 재선 선언 후인 지난해 6월에도 미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넘어졌다. 미 전역에서 82세 고령 대통령의 신체 쇠약에 대한 우려가 번졌다.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첫 TV 토론은 '고령 리스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결정적 사건이었다. 90분 맞대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노쇠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내내 쉰 목소리에 말을 더듬었으며, 질문에는 동문서답했다. 오죽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토론 도중 "그가 문장 끝에 뭐라고 말했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당 안팎에서 '바이든 교체론'이 분출했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등 진보 성향 미 언론은 지난달 28일부터 공개적으로 하차를 촉구했다. 토론 직후 '미국인 72%가 바이든 대통령이 11월 대선 도전을 포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CBS 여론조사를 필두로, 민주당원 사이에서도 사퇴 여론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급기야 지난 2일 로이드 도겟(텍사스) 하원의원을 시작으로 민주당 상·하원의원, 거액 기부자의 사퇴 촉구 행렬이 시작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본 없는 기자회견을 통한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8~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그 무대였다. 약 50년 정치 생활에서 외교 전문성을 자부하는 만큼 주특기를 뽐낼 장이었다.
그러나 말실수가 다시 한번 그의 발목을 잡았다. 폐막 날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 협약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 소개하는 대형 실수를 했다. 기자회견에서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트럼프 부통령'이라고 칭했다. 민주당 내에서 우려 목소리가 더 커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도 결정적이었다. 13일 펜실베이니아주(州)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오른쪽 귀에 총을 맞고 피를 흘렸지만 지지자들 앞에서 강인한 모습을 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세가 무서웠다.
피격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 대세론'은 날개를 달았다. 지지율 격차는 계속 커졌다. 지난 16~18일 CBS방송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은 52%,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47%였다.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5%포인트 격차로 앞선 것은 3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코로나19 재감염은 '바이든 교체론'에 쐐기를 박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17일부터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패색이 짙어지자 민주당 거물의 물밑 움직임도 빨라졌다. 바이든의 오랜 우군이자 당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사퇴를 압박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출마 재고를 요청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격리 중이던 19일까지도 성명을 통해 완주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거세지는 압박에 결국 지난달 27일 TV 토론 논란 후 25일 만인 21일 대선 레이스에서 하차했다.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 대통령 4년 등 도합 48년 정치인 생활이 사실상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