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1위 KIA의 후반기 질주가 무섭다. KIA는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열린 9일 잠실 LG전부터 21일 한화전까지 0.818(9승 2패)의 승률을 기록했다. 그 중심에는 초보 사령탑 이범호 감독이 있다. KIA는 이 감독의 강단과 경기운영으로 독주 체제 굳히기에 나섰다.
이 감독의 승부사 기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경기는 17일 광주 삼성전이다. 그는 이 경기에서 팀의 에이스인 ‘대투수’ 양현종을 5회 2사에 마운드에서 내렸다. 승리투수 요건까지 아웃카운트 1개만을 남긴 시점이었다. 더군다나 스코어도 9-5으로 4점의 여유가 있었다.
평소 ‘형님 리더십’을 보여주는 이 감독의 성향대로라면 에이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해당 이닝을 끝까지 양현종에게 맡길 공산이 컸다. 그러나 그는 양현종이 5회에만 3피안타 2실점으로 흔들리자 지체 없이 좌완 김대유를 투입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적중했다. 김대유는 삼성 김영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팀은 10-5로 승리했다.
21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이날 선발이었던 황동하는 3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하며 팀의 5-0 승리를 견인하다 4회 들어 급격하게 흔들리며 3점을 내줬다. 이 감독은 다시 한번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비록 실점하긴 했지만 아직 2점 차로 앞서고 있던 2사 상황에서 황동하를 내리고 김대유를 ‘원포인트’로 투입한 것이다. 김대유는 한화 황영묵을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처리하며 또다시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
이 감독의 용병술은 9회에 또 한 번 빛났다. KIA는 6회말 이도윤의 1타점 적시타와 김인환의 역전 3점 홈런으로 패배 위기에 몰렸는데, 이 감독은 9회초 선두타자 서건창 타석 때 김도영을 대타로 기용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서건창이 이날 1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 2볼넷으로 나쁘지 않은 컨디션을 보였음에도, 체력 안배 차원에서 선발명단에서 제외했던 김도영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최우수선수(MVP) 후보’의 대타 기용은 이날 1점 차 짜릿한 역전승의 결정적 한 수가 됐다. 김도영은 7구 승부 끝에 안타를 때려냈고, 후속타자 최원준이 볼넷으로 걸어 나가면서 역전의 발판이 마련됐다. 이어 1사 1·2루에서 최형우가 우월 3점포를 쏘아 올리며 KIA는 8-7로 승리, 6연승을 이어갔다.
이 감독의 승부사 기질은 장기적인 팀 운용에서도 빛나고 있다. 그는 19일 대전 한화전에 선발 예고됐던 투수 윤영철이 척추피로골절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대체 선발 체제를 꾸리는 대신 김도현을 아예 새 선발진에 포함시켰다.
당시 이 감독은 “윤영철은 3주 후 재검진이라 재활까지 생각하면 최소 2~3개월은 나오지 못할 것”이라며 “이 상황에서 대체 선발로 남은 시즌 5인 로테이션을 꾸리면 불펜 투수들의 과부하로 힘든 경기가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도현은 선발을 해본 경험도 있고, 젊기 때문에 투구 수를 금방 올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김도현을 새 선발로 생각하고 투구 수와 페이스를 올려가면서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김도현은 5이닝 2안타 4삼진 1실점 비자책으로 7-3 승리의 주역이 됐다.
‘초보 승부사’ 이 감독은 이번 주 NC와 키움을 상대로 독주 체제 구축에 나선다. KIA는 올 시즌 두 팀을 상대로 12승 2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 마무리 정해영과 불펜 최지민의 복귀로 이 감독의 ‘운용의 묘’는 더욱 빛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