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에너지의 기술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민관 협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내놨다. 2050년대에 전력 생산을 실증한다는 일정에 따라 상용화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용화를 위한 핵심 테스트베드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가동이 미뤄진 데다, 국내 핵융합 산업 생태계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점은 과제로 남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2일 오후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서 ‘제20차 국가핵융합위원회’를 열고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을 심의·의결했다. 한국형초전도핵융합장치(KSTAR) 운전과 ITER 참여를 통해 확보한 역량을 바탕으로 대학·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해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속도를 높이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민간의 엔지니어링 역량과 공공의 핵융합 기술 역량을 결합해 고온 초전도, 혁신 디버터 등 차세대 핵융합 장치 기술을 조기에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소형 핵융합로 개발을 위한 민관 협력 프로그램도 도입하고, 디지털 트윈 기술로 가상 핵융합로를 구현해 설계를 고도화하고 표준 운영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나아가 핵융합 스타트업 창업을 돕고, 국내 기업의 세계시장 진출 등도 지원하기로 했다.
과기부는 이를 위해 1조2,000억 원 규모의 ‘핵융합 혁신형 기술개발 및 인프라 구축사업’을 추진한다. 빠르면 내년에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2026년부터 2035년까지 10년간 각종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문제는 ITER의 가동이 당초 예정됐던 2025년에서 2034년으로 9년이나 미뤄졌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제조 결함 등이 문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납품한 부품이 설계와 오차가 있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ITER 국제기구가 검토한 결과, 해당 부품은 설계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국이 추가 책임금을 부담할 일은 없게 됐다. 단, ITER에 한국의 기여분이 9.09%인 만큼 일정 지연으로 추가 투입돼야 할 예산(약 7조5,141억 원)은 일부 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정부는 ITER의 목표 달성 정도에 따라 우리나라 핵융합 전력 생산 실증로 건설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ITER 가동이 지연되면서 이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ITER 지연으로 생긴 시간을 국내 기술 영향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이창선 과기부 공공융합연구정책관은 지난 19일 언론 대상 사전 설명회에서 “ITER의 설계 및 운영을 유럽 기준으로 하려 했지만, 가동이 지연된 만큼 우리 기술을 밀고 나갈 여지가 생겼다”며 “ITER에서 실험할 시나리오를 KSTAR에서 먼저 검증해볼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민관 협력이 성과를 내려면 민간 부문을 먼저 키워야 한다는 딜레마도 남아 있다. 국내 핵융합 관련 기업으론 ITER 제작에 참여한 1·2차 하청업체 200여 곳이 있으나, 원천 기술을 확보한 핵융합 전문 기업은 손에 꼽는다. 이 정책관은 “핵융합 실험로를 지을 수 있는 엔지니어링 역량을 키우는게 우선 과제”라며 “중공업의 제조 역량에 기술을 접목해 핵융합 엔지니어링을 강화할 수 있도록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