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초등학생 의붓아들을 약 1년간 모질게 학대한 계모가 살인 혐의에 대해 재차 판단을 받게 됐다. 하급심에선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학대치사죄만 유죄로 봤지만, 대법원이 "살해의 고의가 인정된다"며 사건을 원심법원에 돌려보낸 것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살해,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11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함께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남편 B씨의 상고는 기각돼,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A씨는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인천 남동구 자택에서 의붓아들을 학대하고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아이가 친모를 닮았다거나, 양육 스트레스로 자신이 유산을 했다는 이유 등을 들며, 연필로 아이 허벅지를 200차례 찌르거나 의자에 결박하는 식으로 학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아이에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다는 핑계로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대신 홈스쿨링 명목으로 집에 가둬두고 성경책 필사와 학습지 풀이만 강요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던 아이는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38㎏이었던 체중은 사망 당시 29.5㎏까지 줄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9㎏은 남아 8세, 여아 9세 정도의 중위 체중에 해당한다.
아이의 생부인 B씨도 A씨의 이런 학대를 말리지 않고 방치했다. 오히려 "각목을 하나 만들어서 패겠다"며 A씨 범행에 동조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숨진 아이는 일기장에 "나는 죽어야 된다, 내가 있다면 모든 게 다 불행해진다, 치매에 걸려서 죽고 싶다"며 부모에게 잘못을 구하고 애정을 구하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1심은 A씨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봤다. 다만 "살해의 고의가 미필적으로라도 있었다는 점(어떤 행위가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행동한 것)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최대 사형까지 가능한 아동학대살해 혐의가 아닌 상대적으로 형이 가벼운 아동학대치사 혐의만 인정했다. 앞서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1심 판결에 사회적 공분이 확산했지만, 2심 판단도 같았다. 당시 재판부는 "유산으로 인한 미움이 피해아동을 살해할 정도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부족하고, 피고인 행위의 사망에 대한 영향력은 그리 높지 않다"며 검찰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아이가 사망 직전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도 방치한 사실, 이후 아이가 미동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도 별다른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 오히려 홈캠을 버리는 등 증거를 인멸한 사정 등에 비춰, 살해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2021년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으로 도입된 아동학대살해죄에 대해 '살해의 고의'를 인정할 기준을 판시하고, 그에 따라 A씨에 대한 아동학대살해의 고의를 인정한 의의가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