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의 '흑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입력
2024.07.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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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3 “1967년의 길고 무더운 여름”


미국은 반란·폭동으로 세워진 나라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폭군에 대한 반항은 신에 대한 순종”이라며 시민들을 선동했다. 미국 초대-세계 최초 부통령이자 제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는 “우리는 그들(영국)의 흑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자유·평등을 위한 무력을 정당화했다.

미국사가 흔히 ‘학살(massacre)’로 분류하는 1770년 보스턴 차 사건 이래 2020~21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이은 인종 폭동까지 미국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멎은 자리에서 저 전통을 이어왔다. 구호는 거의 늘 “‘흑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거였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는 그 역사의 가장 굵은 힘줄이 돼 온 도시로, 도망노예의 체포-강제송환 법원 판결에 반발한 흑인 주민들이 일으킨 1833년 폭동에서부터 2020년 인종폭동까지 대규모 폭동만 15차례를 치렀다. 식민지 시절 북동부 거점 도시로 원주민-정착민의 알력과 프랑스-영국의 갈등, 노예 자유주였던 미시간주로 끊임없이 유입된 남부 흑인 및 도망 노예들과 기존 백인들의 인종적 억압과 저항, 20세기 중반 자동차-중공업 퇴조와 함께 시작된 만성적인 궁핍은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단순화하자면 디트로이트의 정치-행정은 무능했거나 개혁의 의지가 없었고, 경찰을 포함한 백인 권력은 자신들이 지닌 유무형의 권력을 나눌 의사가 없었다.

미국인들이 관용어처럼 쓰는 ‘1967년 길고도 무더운 여름(Long, hot summer of 1967)’은 그해 미국 전역 159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인종 폭동을 일컫는 말이다. 그 폭동의 가장 거센 불꽃도 7월 23일 디트로이트에서, 백인 경찰의 무허가 술집 단속을 기점으로 발화했다. 주방위군에다 육군과 공수부대 각 1개 사단까지 투입된 엿새간의 폭동으로 시민 23명을 포함, 43명이 숨지고 1,189명이 다치고 7,200여 명이 체포됐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