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도 다운 받으랬어요"... 족집게 학원 못간 학생들, 불법 자료방 서성인다

입력
2024.07.23 09:00
10면
[사교육 '족집게' 카르텔이 낳은 비극]
월 수십만 원 '대형학원 교재비' 부담에 
교재 불법 공유방 이용자 17만명 넘어
교사·학원·교육당국 어른들의 책임 커 
"카르텔 수사보다 입시제도 개편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교사들은 '독점 계약'까지 맺어가며 학원에 수억 원을 받고 문제를 팔았다. 대형 입시학원은 이렇게 사들인 문제로 '족집게 교재'를 만들었다. 수험생들은 기꺼이 비싼 값을 치르고 교재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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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학원에 문항 팔아넘긴 현직교사들… 한 문제에 30만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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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경찰의 사교육 카르텔 관련 1차 수사결과로 드러난 민낯이다. 교육부가 작년 7월 일부 입시학원과 수능 출제위원 간 유착 혐의가 의심된다며 수사 의뢰한 지 1년 만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최대 수 십만 원 하는 족집게 교재를 살 여유가 없는 학생들은 '텔레그램 불법 공유방'을 떠돈다. 이곳에선 유명 학원의 최신 모의고사가 실시간 공유되는데, 이용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불법 공유 현직 교사들도 추천


"저희 담임 선생님이 가르쳐주셨어요. 텔레그램 들어가서 학원 교재 다운로드 받아서 참고하라고."
서울 소재 고교 2학년 A군

22일 교육업계 등에 따르면 대형 입시학원 교재 등이 불법 공유되는 텔레그램 채널 '유빈 아카이브' 이용자가 17만 명을 넘어섰다. 유빈 아카이브는 특별한 가입 절차나 비용 없이 접속할 수 있다. 이 방 회원들은 자신이 확보한 사설 모의고사 문항이나 교재 등 자료를 전체 이용자에게 공유한다. 일종의 '품앗이'다. 대학가에서 주로 이뤄지던 교재 불법 복제가 고등학생 사이에 성행하는 셈이다. 유빈 아카이브에는 수능 대비 문제집 뿐 아니라 로스쿨 입학시험인 법학적성시험(LEET) 대비 문제집도 올라온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텔레그램 불법 공유는 이미 공공연연한 사실이다. 일부 학원의 경우 수능이나 6월·9월 모의평가 전 사설 모의고사 문항을 수 십만 원에 판매하는데, 학원비 등으로 월 100만 원 이상 쓰고 있는 학생들 입장에서 이를 정가 구매하는 건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직 교사가 불법 공유방 참여를 부추기기도 한다. 의대 진학을 꿈꾸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2학년 A군은 "담임 선생님이 텔레그램 접속 방법을 직접 가르쳐주셨다"며 "최신 문제집 등 업데이트가 좀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모의고사 전 풀어보기 좋다"고 전했다. 재수생 B씨는 "1년 더 입시를 준비하니 부모님에게 학원비나 교재비까지 부탁하기 죄송하다"며 "서로 다른 강의를 듣는 친구들끼리 문제집을 공유하거나 텔레그램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한다"고 했다.

'엘리트' 교사들의 도덕적 해이


EBS 출강·수능 출제위원 등 경력이 쌓이면 입시학원에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와요. 강사로 영입하고 싶다는 제안뿐 만이 아니고, 직접 만든 문제를 얼마에 사고 싶다는 식이에요.
서울 소재 고교 현직 수학 과목 교사

물론 이런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이다. 그러나 학생들을 불법의 장으로 내몬건 다름 아닌 '어른'들이다.

먼저 교육자로서 사명감은 나몰라라 한 교사들의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문항 판매로 경찰에 적발된 현직 교사 다수가 EBS 강의 및 교재 출판에 참여하거나 수능 출제위원 경력이 있는 소위 '엘리트'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 교사 C씨는 "EBS 교재 등을 만들다 보면 다른 학교 교사와 안면을 트는데 이를 통해 알음알음 사교육 업계에서 영입 제안 등이 온다"며 "수능과 모의평가 출제위원 등으로 '스펙'을 쌓은 교사 입장에선 봉급이나 처우 등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에 넘겨진 교사 상당수가 "공무원의 겸직금지의무 위반에 따른 징계 사유는 될지언정 형사처벌 사안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족집게 과외'의 기업화에 나선 입시학원 책임도 크다. 이들 학원들은 수능 출제위원 섭외를 위해 학원 관계자를 교수 대학원실에 입학시켜 동향을 파악하거나,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해 간접 접촉하는 등 치밀한 등 방식을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재 판매로 인한 수입이 천문학적이라 출제위원 섭외에 수억 원쯤은 당연한 투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경찰에서 잡은 교사와 교수 규모는 '새발의 피' 수준"이라며 "청탁금지법이 아닌 공무원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을 적용해 일벌백계했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교육부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오랜 기간 지속된 현직교사와 사교육 업체 간 유착 관행을 사실상 방치했다. 규정상 최근 3년 내 수능 관련 상업용 수험서 집필은 출제위원 선정 결격사유지만 평가원 측은 교사 본인이 작성해 제출하는 자격심사자료로 대신했다. 교육부가 전날 평가원 규정을 교육부 자체 훈령으로 격상해 수능출제·검토위원 선정 제한 요건을 강화했지만 '뒷북'이라는 비판이 여전하다. 양 교수는 "당국이 출제위원들 일탈 행위를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문제 소지가 있는 교사들은 배제했어야 하는데 그대로 둔 셈"이라고 혀를 찼다.

"입시제도 근본부터 고쳐야"

전문가들은 일부 일탈 교사나 학원을 처벌한다고 사교육 업계의 오랜 관행이 한 번에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입시제도 개편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다.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학령 인구 감소, 지역 대학 통폐합 등의 교육 환경 변화를 반영해 절대평가 확대 등 사교육의 근본 원인인 입시 경쟁구조 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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