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평화협정에 긍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승장구하자 '트럼프 2기'를 대비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어려운 전황에다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론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재집권한다면 전쟁을 지속하기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협상 쪽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하루 전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 후 평화협정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이날 매우 좋은 전화 통화를 했다"며 "그가 연락을 해와서 고맙다"고 밝혔다. 이어 "양측(우크라이나·러시아)은 함께 폭력을 끝내고 번영을 향한 길을 닦는 거래를 협상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미국 CNN방송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2년 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와 협상할 의향이 있음을 시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오는 11월 제2차 평화 정상회의를 추진한다며 "회의에는 러시아 대표단도 참석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종식을 논의하는 평화회의는 지난달 15, 16일 처음 개최됐으나 러시아는 불참했다. CNN은 이때 러시아가 초대받지 못했다며 "(당시에)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철군한 후에야 회담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트럼프 대세론' 부상 여파로 풀이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돈을 지출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해 왔고, 그의 부통령 러닝메이트 JD 밴스 상원의원도 강경한 지원 반대론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되면 내년 1월 취임 이전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장담해 왔는데, 지원을 멈추고 평화협정을 사실상 강제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존 허브스트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는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거래가 공정하다는 가정하에 젤렌스키는 협상 의사를 강조함으로써 잠재적 트럼프 행정부에 다가가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CNN에 설명했다.
CNN은 "우크라이나는 현재 최전선 상황의 어려움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의 미래 지원 수준에 대한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서방의 지원이 충분치 않다며 "전쟁의 결과는 우크라이나 국경 너머(서방 동맹국)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답답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영토 포기는 없다'던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니지만,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 CNN에 따르면 허브스트는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 수복 없이 평화를 달성하는 방안을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영토 일부 포기도) 가능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