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정정을 하고 주민등록번호 변경 절차를 밟던 성소수자에게 한동안 공중화장실을 쓰지 말라고 조언한 경찰 발언은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타인의 시선 등을 이유로 공중화장실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은 위법하다는 점을 지적한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8-1부(부장 정인재)는 성소수자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항소를 기각하고 지난달 14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양측 다 상고하지 않아 2일 확정됐다. 배상액은 청구 금액 300만 원 중 30만 원만 인용됐다.
A씨는 2020년 법원에서 성별을 '남'에서 '여'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도록 허가받았다. 이후 주민등록번호 변경 절차를 밟는 도중 A씨는 경찰에 '여성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다가 경찰이 출동할 경우, 성별 정정 신고 접수증을 제시하면 문제가 없는지' 문의했다. 경찰 B씨는 "한동안 공중화장실을 이용하지 말아라. 하루 이틀 참는 것은 엄청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A씨는 B씨 발언이 성소수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발언이라 보고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모두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화장실을 편하게 갈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보편적 인권"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A씨는 난처한 상황을 예상해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는데도 인권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경찰관 B씨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재판부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적절한 조언을 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적어도 신고처리 절차를 소개해야 했다"면서 "(그런데도) 당분간 용변을 참았다가 집에서 해결하라는 식의 부적절한 대처 방법만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소송에 앞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으로 해당 경찰관이 인권교육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해 배상액을 30만 원으로 결정했다.
배상 액수는 적지만, 의미는 남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중화장실은 성소수자들이 극심한 차별을 겪는 공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21년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591명 대상, 인권위)에 따르면, 40.9%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부당한 대우나 시선이 두려워 정체성과 다른 성별의 화장실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음료·음식을 먹지 않거나(39.2%), 화장실 이용을 포기(36.0%)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응답도 적잖았다.
사법부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2021년 대구지법 포항지원에선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학원에서 트랜스젠더 수강생의 화장실 이용을 못 하게 한 학원 운영자에게 700만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용 제한 행위를 넘어 이를 전제로 한 경찰관 발언도 인권 침해로 인정되면서 향후 비슷한 사건에서 선례가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박한희 변호사는 "(성소수자 인격 침해성 발언을)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성소수자의 화장실 이용이란 기본적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느리지만 차근차근 사법부가 소수자 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 나가고 있는 한 단면"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