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불법 도박업체들이 수사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입금통장으로 가상계좌를 활용하자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섰다. 문제가 있는 가상계좌를 발급한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와 이들과 계약한 저축은행 및 지방은행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21일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에 따르면 최근 대포통장에 대한 정부 규제가 강화되자 온라인 불법 도박업체들은 가상계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가상계좌는 특정 목적을 위해 임시로 생성되는 계좌번호로,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공과금을 납부할 때 부여받는다.
그간 온라인 도박업체는 대포통장 공급조직에 매달 수백만 원을 내고 대포통장을 써왔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범죄 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은행에서 20영업일 내 새 계좌를 만들 수 없도록 규제하면서 대포통장 가격이 치솟았다. 대안으로 카카오뱅크 계좌 한 개만 있으면 손쉽게 개설할 수 있는 모임통장이 주목을 받았지만, 이 역시 규제가 강화됐다. 도박업체 운영자들이 가상계좌에 눈을 돌린 이유다.
가상계좌는 은행과 계약한 PG사가 운영을 대행한다. 은행 모계좌 1개에 1만 개의 가상계좌 번호를 생성할 수 있다. PG사가 이를 쇼핑몰 등 가맹점에 공급하는 구조다. 문제는 도박이나 보이스피싱 등에 가상계좌가 사용돼도 해당 가상계좌 1개만 지급정지 조치를 받는다는 점이다. 도박업체 입장에선 나머지 수천 개의 가상계좌로 입금통장만 바꾸면 돼 대포통장보다 훨씬 유리하다.
이에 가상계좌를 확보해 불법 도박업체에 유통하는 조직까지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저축은행, 지방은행의 퇴직 임원에게 접근해 수억 원의 뒷돈을 주면서 본인들이 관리하는 PG사에 가상계좌를 받아오는 특정 세력이 활동하고 있다"며 "이들은 받아 온 가상계좌를 500개씩 나눠 주요 도박 업체에 제공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박없는학교는 도박업체에 가상계좌를 넘기는 PG사뿐 아니라 은행 역시 관리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은행이 PG사를 통해 가상계좌 이용에 대한 수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도박없는학교는 최근 광주은행, 웰컴저축은행 등에 대한 고발을 진행했다.
신알찬 법무법인 세담 변호사는 "은행은 PG사와 가상계좌 발급 계약을 하고, PG사가 쇼핑몰 등으로 위장한 도박업체에 가상계좌를 제공하는 것이라 PG사만 도박 방조로 처벌받아왔다"면서 "입금 방식이나 규모 등을 보면 도박업체로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만큼 은행이 진정 관리 책임이 없는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상계좌가 불법 영역에 활용되고 있는지 실태를 보고 있다"며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