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의 정청래가 통하는 정국

입력
2024.07.18 19:00
26면
집권 3년차 박근혜 정부 소환하는 정치
의혹 도려내는 결단 없으면 배가 뒤집혀 
민심은 촛불과 탄핵역풍 그 사이에 놓여



지금 정국은 집권 3년차 박근혜 정부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 청와대는 신년 기자회견, 총리교체에도 불통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우병우 논란, 측근 실세 3인방 논란에 막상 대통령은 ‘동지’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의혹만 제기할 뿐 정작 확인된 건 없지 않으냐는 언론 대응까지도 그랬다. 결과적으로 언론의 정권 비위 취재를 자극했고 종래 국정농단 사건이 공개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모두 대통령 지지율 30%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역대 정권 임기 말 수치(20~30%대)에 머물러 있다. 권력의 자산인 지지율이 이 정도라면 개혁은 멀리 도망가고, 대통령은 희화화 대상일 뿐인 게 우리 정치의 경험이다. 그런데도 용산 대통령실은 채 상병 건, 김 여사 사건의 의혹을 외려 키우며 스노볼 효과를 자초하는 양상이다. 위태로움을 잊은 안이함, 이대로라면 눈덩이 두 개는 정권 끝까지 굴러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교훈대로, 의혹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민심이 사실로 믿는다면 과감히 도려내는 결단을 보여야 맞다. 의혹의 진위 논란으로 국정의 발목을 잡혀선 배가 뒤집히게 된다.

그렇게 비판해온 문재인 정부마저 반면교사 삼지 못한 탓이 크다. 촛불 이후 5년은 얼마나 단기간에 민심이반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경우다. 적폐청산, 검찰개혁에 집착하다 ‘경포대’ 비판까지 나온 것인데, 방향은 다를지라도 윤 정부 역시 민심과 동떨어진 정체성 설정과, 일방적 국정운영으로 지지층 이탈을 가져왔다. 자유주의를 앞세운 가치행보만 해도 불공정하고 반자유주의적 특권 세력에 대한 경고였다면 상황은 달랐다. 그러나 이념공세는 가치와 이념에 무관한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 상투를 잡는 일만 남았다.

긴장이 높아지는 정국에서 중요한 건 민심의 소재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정서가 확산되면 개헌론과 탄핵론이 부상하겠으나 아직은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할 수 없다. 물론 공감대가 확산될 불씨가 여전하고, 채 상병 특검의 무산과 김건희 여사 사건의 법률적 무마는 언제든 기름이 될 수 있다. 지금의 민심 수위는 두 장면에서 가늠할 수 있다. 서울의 98차 집회를 비롯, 여러 지역에서 촛불집회가 열렸지만 참가자는 예상만큼 확산되지 않고 있다. 세상이 혼탁하고 민생이 어렵지만 촛불을 드는 것에 부동의하거나 신중한 것이다.

그런 한편에서 여론 역풍을 우려해 단어조차 꺼내지 않던 ‘탄핵’이 쉽게 입길에 오르는 건 무서운 변화다. 탄핵 발언에도 민주당 지지율에 변화가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여론은 정략적일지라도 국민청원 탄핵청문회까지 용인하는 것이다. 청문회를 이끌 ‘조롱과 모욕의 정청래’를 비판하면서도 시원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독설의 정청래 의원이 먹히는 게 지금 정치인 셈이다. 민심은 결국 촛불과 탄핵역풍 그 사이 위태로운 지점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여야 모두 섣불리 행보하면 촛불과 탄핵역풍을 초래하는 위험한 형국이다.

서늘해진 민심을 반영하듯 사람들이 서로 만나 정치 얘기 안 하기가 어려웠던 일상이 달라졌다. 보수와 진보의 생각이 비슷해져 싸울 일이 없어진 것인데, 윤 대통령과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한 평가는 대표적이다. 보수가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접고, 진보가 이 전 대표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면서 다툴 일이 사라졌다. 이대로라면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에 대한 걱정, 이 전 대표를 대안으로 삼기 어려운 이유도 다르지 않다. 지금 여야 전당대회라도 대안을 보여주진 못할망정 비첩의식으로 권력을 향해 고백하는 연서나 쓰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이태규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