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가계금융복지조사(통계청)에 따르면 희망하는 적정 노후생활비는 월 324만 원입니다. 50대 가구주의 평균 가구소득이 월 700만 원이고, 은퇴 후 소비가 상당히 줄어드는 부분을 감안하면 월 324만 원이라는 금액은 어느 정도 현실적인 기대로 보입니다. 다만 은퇴 후 노후생활기간 내내 건강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데요. 적정 노후생활비는 특별한 질병 등이 없는 건강한 노년을 가정했을 때 필요한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건강수명은 기대수명 중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아프지 않은 기간을 의미합니다. 다시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의 차이를 ‘유병기간’이라고 하는데 여자 19.4년, 남자 15.0년으로 추정됩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해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만큼 유병기간도 함께 길어지고 있습니다. 유병기간이 길어진다면 의료비 지출로 인한 필요 생활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노후의료비 지출에 대한 주요 사항들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통계청의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1인당 진료비(2021년)는 497만 원으로 전체 1인당 진료비 186만 원 대비 2.7배나 높으며 지속적인 증가 추세입니다. 따라서 65세 이상 노인가구에서는 의료비가 노후생활에 부담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노후의료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 것을 대비하고자 할 때에는 우선 실손보험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실손보험은 도입된 이래 몇 차례 개정되면서 현재 판매되지 않는 1~3세대와 판매 중인 4세대 상품까지 있습니다. 각 세대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현재 실손보험에 가입돼 있다면 보장 내용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2009년 7월 이전 1세대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본인이 부담한 병원비를 전액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2세대 가입자는 90%(비급여는 80%)까지 보장받고, 3세대 상품은 주요 비급여항목의 경우 70%까지 보장받는 내용입니다. 현재 가입 가능한 4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비급여항목 전체가 70%까지 보장받고, 그 사용량에 따라 보험료가 차등 적용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65세 이후 실손보험에 늦게라도 가입하고 싶다면 노후실손보험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최대 80세까지 가입 가능하며 일반 실손보험에 비해 자기 부담비율이 높습니다. 또한 보험료가 저렴하고 보장 한도가 큰 대신 가입 조건이 까다로운데 간호사 방문진단 후 승인이 있어야 가입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보험에 가입하기 전에 현재 가입돼 있는 보험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보험 통합조회시스템 ‘내보험 찾아줌’ 서비스를 활용해 보장 대상질병, 보장금액, 만기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예전 가입한 보험은 만기가 80세로 설정된 경우가 많으니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확인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의료비 대비를 위해 기본적인 보험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환은 없는지 파악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교적 많은 치료비가 필요한 대표적인 질환으로 암과 치매가 있습니다. 2022년 기준 사망원인 순위를 보면 악성신생물(암)은 다른 질환에 비해 높은 사망률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치매로 대표되는 알츠하이머병은 2012년 대비 순위가 4계단 상승, 사망증가율은 243.9%로 매우 높습니다. 의료비 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은 의료기술의 발달과 의료 서비스 접근성 개선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환들이 많아진 이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환별 사망원인을 보면 암이 여전히 치명적인데, 특히 65세 이상 고령 인구에서의 사망률이 높습니다. 65세 이상 암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783.9명으로 전체인구 사망률 162.7명 대비 4.8배나 됩니다. 주요 만성질환 중 암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535만 원으로 만성신부전증(832만 원) 다음으로 높아 암에 걸렸을 경우 의료비 지출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건강한 사람은 암보험을 조기에 가입해두면 도움이 됩니다. 이때 가족 유전력을 고려해 보장 내용을 결정하고 수명이 길어진 만큼 보장 기한을 확인해야 합니다.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치매 발병의 증가는 고령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2022년 전국 65세 이상 추정 치매환자 수는 94만 명, 국가단위 치매관리비용은 20.8조 원에 이릅니다. 2030년에는 각각 142만 명, 38.6조 원에, 2050년 315만 명 및 138.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치매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2022년 기준 2,221만 원으로 추정되며, 이 중 직접 의료비는 1,185만 원, 간병비 등 직접 비의료비는 726만 원에 달합니다. 건강보험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1인당 연간 총 관리비용은 60세 이상 가구주의 연간 가구소득 5,013만 원(2022년)의 절반 가까운 약 44%에 해당하는 금액이기도 합니다. 치매 중증도에 따라 1인당 연간 관리비용에 차이도 크게 납니다. 제일 위중한 중증 관리비용은 3,480만 원으로 최경도 관리비용(1,620만 원)의 2배가 넘습니다. 치매환자가 생긴다면 연간소득이 낮은 노인가구의 경우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치매환자 관리비용이 부담스러운 수준이지만 다행히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 이후 1인당 진료비는 감소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치매환자 가족지원제도가 점차 확대돼 가고 있음에 따라 제도를 잘 활용하면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우선 보건복지부와 중앙치매센터에서 운영하는 치매상담콜센터(Tel.1899-9988)를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치매환자의 증상, 병의 단계에 따라 맞춤형 정보를 제공받고, 병의 단계, 관리 상황 등에 따라 돌보는 방법, 간병 어려움 등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치매 치료 관리비 지원사업, 노인맞춤 돌봄서비스, 치매가족 휴가제 이용은 치매가족의 관리와 비용 절감에 다양한 도움을 줍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치매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단한 생활습관의 변화를 통해 치매 발병 위험을 낮춰가야 하겠습니다. 주요 제도에 대한 내용 및 예방정보 등은 중앙치매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0년 100세시대연구소가 실시한 중산층인식 설문조사에서 건강, 재무, 일·여가, 가족, 관계 5가지 영역 중 중산층이 노후에 가장 걱정하는 영역으로 ‘건강(83.7%)’을 꼽았습니다. 한편 ‘보험 등을 이용해 은퇴 이후 의료비에 대비하고 있다’라고 답변한 사람은 69.2%로 비교적 의료비 대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규칙적인 운동 참가율은 10명 중 4명 수준(43.2%)에 머물러 건강수명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이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의료비 지출을 사전에 대비하는 방법도 좋지만 그보다는 일찍부터 건강관리에 노력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2019년 일본에서 발간돼 화제가 된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는 노인들의 새로운 격언으로 그 어떤 사회보장제도와 연금 등의 금전적인 보상이 본인의 건강보다는 무익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라는 영국의 슬로건도 같은 맥락입니다.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우리나라도 국가정책적으로 노인건강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할 시점입니다. 건강한 신체에 깃드는 삶의 질 향상과 증가하는 의료비를 감안했을 때 일찍부터 시작하는 건강관리도 효율적인 자산관리의 일환이라는 점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