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유(乳) 업계 첫 여성 CEO, 매일유업 김선희 "기술 뛰어나도 고객 수요 못 맞추면 소용없다"

입력
2024.07.18 14:30
매일유업 김선희 부회장
대한상의 제주포럼 기업인 강연


최태원 회장께서는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는 있어도 좌절은 없었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때 좌절했습니다.


보수적 국내 유(乳) 업계에서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김선희 매일유업 부회장은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던 때를 이렇게 돌아봤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예전에는 관행이라 여기던 일들에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미경을 들이댔고 시시때때로 품질 이슈가 터졌다. "사표를 쓸 겨를도 없이" 잇달아 터진 악재를 막던 찰나 조직 수장에 올랐다. CEO로 꼭 10년을 보낸 올해, 그는 "위기도 좌절도 많았지만 매일유업은 거센 파도에 맞서 버티고 있다"고 평가했다.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7회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인 강연 무대에 오른 김 부회장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고객 수요를 맞추지 못한 우유는 버려야 하더라"고 말했다.

10년 사이 국내 우유 시장은 치솟는 원윳값, 정반대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해외 우윳값 추세, 2026년 우유 무관세 수입으로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 더구나 유례를 볼 수 없는 저출생으로 국내 시장 규모 자체가 줄고 있다.


"사회적 역할 고민하니 수익도 늘어"


김 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매일유업이 '버틴' 비결을 크게 몇 가지로 요했다. 먼저 달라진 시장상황에 맞춘 제품 개발이다. 그는 "연구원 중 한 분이 (고령화가 오래 이어진) 선진국에서는 장년층 근육 감소증에 관한 연구가 많다고 하더라"며 "5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유제품) 보충제를 살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주력 상품이었던 분유 대신 고령화에 발맞춘 상품과 식물성 음료 등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힘썼다. 2018년 출시한 성인 영양식 '셀렉스'와 식물성 음료 매일두유, 아몬드브리즈(아몬드 우유), 어메이징 오트(귀리음료) 등이다.

김 부회장은 "우유로 만들 수 있는 부가가치는 다 만들어보려 했다"고도 말했다. 카페 프렌차이즈 '폴 바셋'을 운영하고 올해 4월에는 베이커리 브랜드 '밀도'를 인수했다. 전북 고창군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유기농 유제품 생산 공장이자 축산 체험 관광 시설인 '상하목장'을 열기도 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꾸준히 실천하다 시장이 열린 사례도 있다. 5만 명에 한 명꼴인 선천성대사이상 환아를 위해 만드는 특수분유(앱솔루트 엠피에이 1·2 단계) 수출이다. 시장성은 없지만 사회공헌 취지에서 25년째 해마다 두 번씩 일반 분유 생산을 열흘 동안 중단하고 이 분유를 만드는데 최근 알리바바그룹 헬스케어 자회사인 알리건강과 수출 협약을 맺었다. 김 부회장은 "비슷한 취지로 (유당불내증 고객을 위해 만든) '소화가 잘되는 우유' 매출의 1%를 어르신 우유배달 지원비에 쓰고 있다"며 "연 매출 100억 원도 안 됐던 매출액이 이제 800억 원 달성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이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