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아가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30대가 항소심에서 1심보다 무거운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살인사건 1년 후 선고 기일에 법정을 찾은 유족은 "교제폭력처벌법의 공백 탓에 지금도 피해자들이 생기고 있다"고 개탄했다.
서울고법 형사6-3부(부장 이예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17일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스토킹치료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도 명령했다. 앞서 검찰은 A씨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A씨의 괴롭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모든 보호조치를 강구했으나, A씨는 피해자의 신고에 앙심을 품고 보복할 목적으로 살상력이 좋은 흉기를 구매했다"며 "사건 당시 모친이 저지하는 등 범행을 중단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살인으로 나아갔다"고 질타했다.
이어 "피해자는 이혼 후 홀로 딸을 양육하고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며 아버지의 병원비까지 책임지고 있었는데 허망하고 비참하게 삶을 마감했다"며 "범행이 계획적이고 잔인한 점 등을 종합하면 1심이 선고한 25년은 지나치게 가벼워 부당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지난해 7월 17일 오전 5시 53분쯤 인천 남동구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전 애인 B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범행을 막으려던 피해자의 모친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양손을 크게 다치게 했고, 6세였던 B씨의 딸은 할머니를 찾아 나왔다가 범행 현장을 목격했다.
당시 A씨는 법원으로부터 B씨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였지만 이를 어기고 피해자를 찾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연애 도중 피해자를 상대로 데이트 폭행을 해 경찰 조사를 받고 헤어졌음에도, 계속해서 B씨를 스토킹해 잠정조치 처분을 받은 지 약 한 달 만에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선고 후 유족 측은 "재발 방지를 위해 교제폭력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의 사촌언니는 "이 재판에서 가장 허무한 것은, 열심히 싸웠지만 동생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2016년 이후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논의와 폐지를 반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제폭력은 교제 종료(헤어짐) 이후 보복범죄나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적으로 연인 간의 사랑싸움으로 치부되거나 일반 폭행 사건과 같이 반의사불벌죄로 의율된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스토킹처벌법을 분리한 것처럼, 교제폭력처벌법을 별도의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