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미국 실리콘밸리 거물 상당수가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에 거액을 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리콘밸리가 속한 캘리포니아주(州)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지만, 최근 들어 뚜렷해지는 지역 내 보수 세력 결집을 보여 주는 현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친기업 행보,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출신인 JD 밴스 연방 상원의원의 부통령 후보 지명 등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 지원 정치활동단체인 '아메리카 팩'의 후원자 명단을 분석해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트럼프에게 기부하기 위해 줄을 섰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지난달 출범한 이 단체에 모인 자금은 벌써 870만 달러(약 120억 원)를 웃돈다. 이 가운데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낸 후원금도 100만 달러(약 13억8,000만 원)가량으로 파악됐다. 주요 기부자에는 소프트웨어업체 팔란티어의 공동창업자 조 론즈데일, VC인 세쿼이아캐피털의 공동창업자 더글러스 레오네, 발로이퀴티파트너스 창업자 안토니오 그라시아스 등이 포함됐다. 가상화폐 거래소 제미니를 설립한 캐머런·타일러 윙클보스 형제도 있었다.
앞서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머스크도 이 단체에 매달 4,500만 달러(약 620억 원)를 기부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FT는 "앤드리슨호로비츠의 공동창업자 마크 앤드리슨, 벤 호로비츠도 직원들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앤드리슨호로비츠는 오픈AI 등에 초기 투자를 한 유명 VC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원하는 단체의 모금액은 최근 전체적으로도 봐도 급증하는 추세다. 4~6월 석 달 동안에만 무려 4억 달러(약 5,520억 원)가 쌓였다. 2016년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모인 총액과 맞먹는 수치다.
그럼에도 실리콘밸리의 기부 행렬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미국 내에서 진보 성향이 가장 강한 지역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FT는 이에 대해 "조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와 세금 정책에 환멸을 느낀 테크리더들이 정치적으로 보수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현 정부와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업가와 자본가를 겨냥해 언론 자유 보호, 가상화폐 산업 지원 등 공약을 내걸었고, 이게 주효했다는 게 매체의 분석이다.
실리콘밸리 VC에서 일했던 밴스 의원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된 것도 이 지역 인사들의 지지 성향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머스크, 가상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의 최고 임원을 지낸 발라지 스리니바산 등은 밴스 의원의 부통령 후보 선출을 두고 '훌륭한 선택'이라는 취지의 글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머스크처럼 한때 민주당에 기부했던 테크리더 일부가 이제는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