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 반 동안 국내 대기업 오너 일가가 5조 원이 넘는 계열사 주식을 내다 판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삼성가 세 모녀의 주식 매도 액수가 전체의 3분의 2에 달했다.
17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올해 지정 대기업 집단 88곳 중 동일인(총수)이 있는 대기업집단 71곳을 대상으로 오너 일가의 계열사 주식 취득·처분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23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18개월 동안 국내 대기업 오너 일가의 주식 처분 규모는 5조67억 원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오너 일가 중 가장 많은 주식을 매도한 곳은 삼성가였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전략기획담당 사장 등 세 모녀가 3조3,157억 원에 달하는 지분을 매각했다.
홍 관장은 총 1조4,052억 원의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 전체 주식 처분 규모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1조1,500억 원의 삼성전자 및 삼성 계열사 지분을 팔아 2위, 이서현 사장이 7,606억 원어치의 삼성 계열사 주식을 팔아 3위에 올랐다. 세 모녀가 주식을 처분한 건 상속세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가는 2020년 고 이건희 회장 사망 이후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2021년 4월부터 5년 동안 약 12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나눠서 내고 있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계열사 주식을 한 주도 처분하지 않았다. 이 회장이 보유한 지분은 삼성그룹의 지배 구도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 주식 매각이 자칫 적대 세력의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삼성 일가 다음으로 많은 주식을 매도한 건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으로 조사됐다. 지주사 전환에 드라이브를 건 정 회장은 현대백화점 지분 1,809억 원어치를 처분했다.
조현상 HS효성 부회장도 1,359억 원어치 주식을 팔았다. 형제간 계열 분리에 나선 효성그룹이 지주사를 분리하면서 조 부회장이 쥐고 있던 효성중공업 지분을 매도한 것이다.
이 밖에도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 1,017억 원 △장세주 동국제강그룹 회장 938억 원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776억 원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 사장 720억 원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 676억 원 순으로 주식 처분 규모가 컸다.
이 기간 대기업 일가에 상속, 증여된 지분 규모는 총 1조2,134억 원이었다. 가장 많은 주식이 상속, 증여된 오너 일가는 효성그룹이다. 고 조석래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효성·효성중공업 등 계열사 5개사 주식(7,880억 원)은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조 부회장에게 넘겨졌다. 조 회장은 6,135억 원어치의 4개 계열사 지분을, 조 부회장은 효성첨단소재 주식(1,745억 원)을 각각 상속받았다.
3세 승계를 준비 중인 한솔그룹도 두 번째로 많은 상속, 증여를 단행했다. 조동혁 한솔그룹 회장은 787억 원의 한솔케미칼 지분을 장녀 조연주 한솔케미칼 부회장에게 신탁했다. 최근 아모레퍼시픽그룹 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차녀 서호정씨도 아버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으로부터 그룹 주식 631억 원어치를 증여받았다.
이 외에도 정지선 회장은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부인과 자녀, 조카들에게 나눠 증여했다. 부인 황서림씨와 자녀 정창덕씨, 정다나씨는 각각 121억 원의 주식을 받았고, 조카이자 정교선 부회장의 자녀인 정창욱, 정창준, 정창윤도 각각 54억 원씩을 받았다.
또한 오너 4세 경영 시대를 연 GS그룹에서도 수백억 원대 증여가 이뤄졌다.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 겸 GS건설 회장은 아들 허윤홍 GS건설 사장에게 311억 원어치의 GS건설 지분을 증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