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비밀스러운 예규

입력
2024.07.17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각 부처 홈페이지에는 ‘훈령·예규·고시’를 알리는 항목이 있다. 행정 업무의 기준을 만들거나 고치면 국민에게 세세히 공개한다. 법의 위임을 받아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행정력이나 공권력을 집행하는지 알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예규(例規)가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 기관이 있으니, 바로 검찰이다.

□ 작년 10월 검찰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대장동 대출 수사 부실 의혹을 제기한 경향신문 등 언론사와 기자들을 압수수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수2과장 시절 수사한 사건으로, 이런 보도가 윤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개정된 검찰청법에 따르면, 명예훼손죄는 검찰이 직접 수사 개시를 할 수 없다. 즉 경찰 소관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시절 시행령을 개정해 검찰 수사 범위를 넓혔지만, 명예훼손죄는 포함 안 됐다.

□ 검찰은 ‘검사의 수사개시에 대한 지침’(대검 예규)에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하나 이상을 공통으로 하는 등 직접 관련성이 있으면 검사가 수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는 입장이다.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다 김만배(화천대유 대주주)·신학림(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윤 대통령 명예훼손 및 배임수재 사건이 나왔고, 언론사들의 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도 대장동과 연관됐다는 주장이다. 대장동 연루자 인터뷰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다고 느닷없이 명예훼손 수사를 당한 기자들 입장에선 황당한 일이다.

□ 검찰은 그러면서 예규 공개는 거부한다. “공개될 경우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해 못할 이유를 댄다. 결국 참여연대가 검찰총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지난 12일 서울행정법원은 “수사의 위법 논란 발생 이유는 오히려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예규를 공개토록 했다. 수사 착수 기준조차 감추면서, 수사에 대한 신뢰를 바랄 순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청을 없애고 수사와 공소기관을 분리하는 법안을 공개했는데, 검찰청이 실제로 없어진다면 가장 큰 기여자는 검사들이 아닐까.

이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