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입법공백 5년, ‘위험한 낙태’ 보고만 있어서야

입력
2024.07.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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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유튜버가 36주 된 태아를 낙태(임신중지)했다는 내용을 담은 영상을 올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겠지만 2019년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뒤, 5년 동안이나 정부와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입법공백 사태의 심각성을 새삼 일깨운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36주면 자궁 밖으로 나와 독립생활이 가능한 정도라는 전문가 의견이 있다”며 “다른 일반적인 낙태 사건과는 다르게 무게 있게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34주 태아를 낙태한 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한 법원 판례를 참조했다”며 해당 여성과 수술 의사를 경찰에 수사 의뢰한 데 따른 것이다.

헌재는 2019년 4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며 형법상 낙태죄의 위헌성을 판시하고 2020년까지 대체입법을 하도록 주문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입법을 하지 않았고, 낙태죄 조항이 소멸된 뒤 4년째가 됐다.

헌재는 당시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낙태는 국가의 생명보호 수단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기준도 제시했다. 22주는 태아가 독자 생존할 수 있는 시기로 분류된다. 그러나 14주, 22주 이상 등 낙태 가능 시기에 대한 요구가 엇갈리면서 정부와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

입법공백 장기화에 낙태 수술과 약에 대한 기준이나 관리, 정보가 부재하면서 이번 사건과 같은 고위험 낙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출산에 가까운 아이를 사실상 살인하는 것이고, 임산부의 건강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먹는 임신중지약 ‘미프진’은 해외에선 의사 처방을 받아 널리 사용되는데, 국내에선 식약처 승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온라인을 통해 고액에 불법 거래되는 지경이라고 한다.

낙태기준에 대해 구성원들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아예 입법조차 방관한다면, 정부와 국회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의견을 조율하고 최대한의 합의점을 이끌어 기준을 만드는 것이 행정과 정치의 기본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