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돌출 외교' vs 유럽 '헝가리 보이콧'… 흔들리는 EU

입력
2024.07.16 20:00
'수요 없는 공급' 헝가리 '평화 외교'에 
분노한 EU "의장국 업무 보이콧" 대응
"의결권 박탈" 요구도... 갈등 지속 전망

헝가리의 '제멋대로 외교'에 유럽연합(EU)과 회원국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헝가리의 EU 의장국 업무에 대한 '보이콧'(집단 거부)을 선언한 것이다. 지난 1일 EU 순회의장국을 맡은 직후 돌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선 헝가리를 향해 수차례 '자제 권고'를 했음에도 이를 수용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행동'에 나선 셈이다.

EU 집행위 "헝가리 주최 회의, 집행위원단 불참"

EU 집행위원회의 에릭 마메르 대변인은 15일(현지시간) 엑스(X)에 "헝가리가 의장국이 된 뒤 벌어진 최근 상황을 고려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헝가리 주최 비공식 이사회에 고위 공무원이 대표로 참석하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비공식 이사회는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서 열리는 정례 장관 회의와는 별도로, 의장국이 주최하는 분야별 장관 회의다. 일반적으로는 담당 집행위원이 참석한다. 따라서 이 회의에 집행위원 대리자를 보내겠다는 건 보이콧 선언이나 다름없다. 통합을 중시하는 EU가 특정 국가를 대놓고 배제하는 건 이례적이다. 이번 결정은 기한도 따로 두지 않고 있어, 최악의 경우엔 헝가리의 의장국 임기가 종료되는 12월 31일까지 이어질 수 있다.

마메르 대변인은 "집행위원단의 헝가리 방문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장국 임기 시작에 맞춰 집행위원단이 해당 국가를 찾는 게 관행이지만, 이 역시 전격 취소한다는 뜻이다.

'회원국 배제' EU의 이례적 결정... 헝가리도 '발끈'

이번 보이콧 결정은 헝가리가 의장국을 맡은 지 불과 2주 만에 나왔다. 그사이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스스로 '평화 사명'이라고 이름 붙인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잇따라 만나 종전 방안을 논했다.

그러나 EU 및 회원국은 '친(親)러시아' 헝가리의 중재 자체를 불신한다. 무엇보다 '의장국 명함'을 악용해 독자적 외교를 한다는 데 불만을 품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푸틴을 회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등 만류를 거듭했지만, 헝가리는 이를 무시한 채 중재 외교를 이어갔다.

집행위원회 결정에 헝가리도 발끈했다. 헝가리의 야노시 보카 EU 담당 장관은 "EU는 회원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이고, 집행위원회는 EU의 기관"이라며 "집행위원회가 협력하고 싶은 회원국을 골라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유로뉴스가 전했다.


'헝가리 불신' 커지는 EU... 당분간 갈등 지속 전망

다만 헝가리의 이런 주장이 EU 내에서 설득력을 얻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집행위원회의 보이콧 결정 이전에도 EU 각 회원국 사이에서는 이미 '다음 달 헝가리에서 열리는 외교장관 행사에 참석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유럽의회(EU의 입법부)에서는 의원 63명이 "오르반 총리의 권력 남용은 EU 회원국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자, EU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니 그에 대한 대응으로 헝가리의 의결권 및 주요 권리를 박탈하자"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에게 15일 보냈다. 당분간 EU와 헝가리 간 갈등 지속이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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