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모 중공업 하청업체에서 방사성물질인 이리듐(Ir)이 내장된 감마선 조사기로 비파괴검사 업무를 수행했다. 방사선 피폭 정도를 알려주거나 반드시 휴대해야 하는 안전장비도 없이 밤낮으로 작업했다. A는 건강진단에서 '백혈구, 혈소판 감소, 추적검사 요망' 판정을 여러 번 받았다. 회사는 검진결과를 통보받고도 작업장소를 변경해 주지 않았다. A는 방사선 과다피폭에 의한 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사망했다(당시 34세). 사망하기 1년 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경위서에 A가 쓴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후회되지만 왜 그리 회사의 이익을 위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어리석게 일했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치료라도 제때 받아 건강했던 옛날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십시오."
회사의 안전관리자는 경찰에서 "법에 정해진 개인별 피폭 선량을 초과할 경우 작업을 할 수 없게 되는데, 그렇다고 착용을 안 한다고 할 수도 없어 회사에서 장비를 따로 보관하다 방사선에 조금 쬐어 안전관리기관에 보냈다"고 진술했다. A가 사망한 지 6개월 만에 같은 증세로 B(29세)도 사망했다. 이 비정한 회사와 안전책임자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각 벌금 1,000만 원이었다. 그 무렵(2014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정한 최고형이었다.
'위험의 외주화, 산안법의 낮은 법정형,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은 계속 성토되었는데, 2018년 한 청년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산안법이 전면 개정되었고, 2022년 1월 27일부터 원청의 경영책임자 처벌을 골자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중이다. 2023년 4월 6일 고양지원의 첫 선고부터 2024년 7월 4일 울산지법의 최근 선고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망 사건을 검색해 봤더니 총 18건이었다. 각 판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고 회사의 근로자 수는 50인 미만이 7곳, 50인 이상 100인 이하 3곳, 100인 이상 5곳이었고, 업종은 건설·건축 9곳, 금속가공 2곳, 주택관리 1곳, 시설공사 2곳, 제조업 4곳이었다. 유독물질 사용으로 29명의 근로자가 급성간염에 걸린 1건을 제외하고 17건은 사망자가 1명이었는데(전부 남성, 평균 나이 54.1세), 그중 하청업체 근로자가 11명(중국인, 네팔인 각 1명 포함)이었다. 원청 등 회사 대표에 대한 형은 징역 6개월에서 2년(평균 13.7개월, 원청에 대한 벌금형은 평균 5,200만 원), 그중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3건(징역 1년과 2년 2건)이었다. 하청업체 대표 및 안전담당자들에 대한 형은 징역(또는 금고) 4개월에서 18개월이었다(안전책임자 1명만 실형).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사망 사건 중 2인 이상 사고나 대기업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은 경우는 아직 한 건도 없다.
한편, 고용노동부의 2024년 3월 말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사망자 수는 522명(사고 213명, 질병 309명)으로 전년 대비 증가했는데, 2022년 12월 말 현황 조사부터 계속 증가세다. 법 시행 이후 크게 나아진 게 없다.
근로자가 추락하면 경영책임자도 함께 추락하도록 법을 설계했는데, 경영가들이 근로자의 추락 방지보다 자신의 추락 방지를 위한 법률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안전조치에 들이는 비용보다 처벌을 피하는 쪽의 비용이 효과가 확실하고 더 싸다고 판단해서일까. 이런 인식이 산재가 줄지 않는 한 원인이라면, 해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경제 논리에는 경제 논리로, 중대재해에는 중대처벌로, 비정에는 비정으로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