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사상가의 책을 읽고 성찰하듯 우리도 한국 사상가를 읽자."
정도전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시대의 사상가' 59명을 엄선한 출판사 창비의 '한국사상선'이 16일 베일을 벗었다. ①사상가 범주에서 배제됐던 군주, 여성, 문인, 정치가, 종교지도자를 망라했으며 ②핵심 저작까지 이해하기 쉽게 담아낸 게 특징이다. 대중 독자를 겨냥한 교양 필독서를 지향한다.
'한국사상선'은 계간 '창작과비평' 60돌을 맞는 2026년 완간이 목표다. 59명의 사상을 30권에 담는 대기획이다. 이날 먼저 공개한 10권을 시작으로 매년 10권씩 선보인다. 전 지구적 위기를 헤쳐나갈 답을 한국의 사상적 거목들의 사유에서 찾아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한국사상선' 간행위원장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날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사상은 세계에 내놔도 기여할 바가 있는데 한국 독자들이라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사상사의 시작은 조선시대부터 잡았다. 한국사상사 대계에서 다뤄지지 않던 20세기 후반까지 포괄한다. 마지막 30권에 김 전 대통령을 포함한 것은 "논란될 수 있는 선택(백 명예교수)"이다. '한국사상선' 간행위원인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국정치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하고,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 해결을 위해 앞장섰던 그의 행동하는 지성을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사상선'은 박지원, 정약용, 김구, 함석헌 등 한국사상을 대표하는 거목뿐 아니라 사상가로 여겨지지 않던 군주(세종, 정조)나 여성(임윤지당, 이효재 등), 문학인(홍명희, 나혜석 등), 정치인(조소앙, 김대중 등), 종교인(한용운, 박중빈 등)까지 끌어들여 한국사상의 외연을 넓혔다.
가독성에 중점을 둔 만듦새는 '한국사상선'이 여타 사상사 대계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한국사상선'은 해당 분야 전문가가 편저자로 위촉돼 핵심 저작을 선별한 후 현대적으로 번역해 실었다. 해설(서문)을 더해 입문서 몫을 다하도록 했고, 부록과 연보도 챙겨 사상가의 행적과 당대 맥락도 담았다. 간행위원인 백민정 가톨릭대 교수는 "정약용처럼 유명한 사상가도 번역된 게 50~60% 정도에 불과하고 초역도 한문 투라 읽기 어려운 현실에서 현대어로 번역하고 해석한 것 자체가 공이 많이 들어간 작업"이라며 "우리 사상가들의 원전을 쉽게 읽고 지금의 삶을 성찰하는 자원으로 쓸 수 있게끔 했다"고 말했다.
'한국사상선'의 시작을 알리는 첫 책 '정도전' 편을 저술한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우리 전근대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 순간인 조선 건국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가 정도전"이라며 "특히 권력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21세기 대한민국에도 경종을 울린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