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암살의 나라’다. 많은 정치인들이 총탄의 위협에 놓여 왔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현대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은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이 대통령으로서는 첫 희생자였다. 제임스 가필드(1831~1881)와 윌리엄 매킨리(1843~1901), 존 F. 케네디(1917~1963)도 총에 맞고 숨져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를 포함해 로널드 레이건(1911~2004)까지 암살이 미수에 그쳐 목숨을 건진 대통령이 5명이기도 하다.
□ 대중문화에서 미국 정치인 암살을 다룬 작품이 여럿 있기도 하다. 1990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어쌔신’은 미국 대통령 암살범과 암살미수범 9명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영화 ‘사선에서’(1993)는 대통령 암살을 계획한 전 미 중앙정보부(CIA) 요원에 맞서는 노장 경호원 프랭크(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분투를 그린다. 프랭크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을 저지하지 못한 회한에 젖어 살아왔던 인물이다. 허구에 미국인의 역사적 기억을 각인한 영화인 셈이다.
□ ‘밥 로버츠’(1992)도 암살과 정치를 소재로 한 영화다. 보수 신인 정치인 밥 로버츠(팀 로빈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다. 아메리칸 드림을 강조하며 미국이 지녔던 옛 가치를 설파한다. 가수 출신이라 유세장에서 노래로 유권자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변변치 못한 집안 출신이면서도 스타의 면모를 갖췄으니 대중이 환호할 만도 하다. 유력 상원의원 후보였던 그는 어두운 비밀을 지녔다. 한 기자가 그의 감춰진 생활을 조금씩 밝혀내자 선거운동에 큰 타격을 입는다.
□ 로버츠는 의문의 저격사건을 거치며 지지율이 깜짝 반등한다. 지난 14일 암살을 겨우 모면해 되레 탄탄한 재선 가도를 달리게 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로버츠는 백만장자에다 TV스타이기도 했던 트럼프의 인생을 닮기도 했다. 미국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로버츠처럼 사건을 꾸민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온다. 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진보 성향 팀 로빈스는 “암살 시도를 부정하는 건 정신 나간 짓”이라고 비판한다. 진영주의에 함몰된 자들을 향한 일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