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스캠'으로 러 남성 돈 뜯은 우크라 사기 집단... "전쟁 자금 충당"

입력
2024.07.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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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미녀 사진으로 러시아 남성에게 접근
데이트 비용 결제·환불로 거액 갈취 드러나

풍성한 갈색 머리의 여성이 매혹적인 눈빛을 보낸다. 러시아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 '디빈치크(Divinchik)'에 올라온 프로필 사진이다. 러시아 남성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데이트를 계획한다. 우크라이나 사기꾼들의 '로맨스 스캠'(온라인에서 이성인 척 접근해 돈을 뜯는 사기)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13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가 소개한 우크라이나 온라인 사기 집단 '화폐군대(Monetary Army)'의 수법이다. 데이팅 앱이 돈을 뜯어내기 위해 현혹시킨 '주요 타깃'은 러시아의 군인, 경찰관 등이었다. 매체는 "갈취한 돈 일부는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지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전했다.

'데이트 꿈'에 부푼 러시아 남성이 타깃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이 화폐군대를 만든 시점은 팬데믹 초입인 2020년이다. 데이팅 앱으로 여성을 만나려는 러시아 남성이 증가했다는 점에 착안했다. 초기 멤버 아서(가명·24)는 "처음엔 작은 그룹이었지만, 최근 100명의 팀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주요 무기는 데이팅 앱 가짜 프로필, 불법 웹사이트, 그리고 가상화폐다. 사기꾼들은 앱에서 나타샤, 아나스타샤, 올레나 같은 이름과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의 사진으로 무장한 뒤, 러시아 남성과 접촉했다. 대화가 무르익으면 '오프라인 데이트'를 제안했다. 발레 공연이나 영화관, 스탠드업 코미디쇼 등의 티켓을 판매하는 예매 사이트를 소개한 뒤, 가상화폐로 35파운드(약 6만3,000원) 상당의 입장권을 구매하도록 유도했다.

물론 웹사이트는 화폐군대가 만든 가짜다. 약속 날짜가 다가오면, 가짜 여성은 "나갈 수 없으니 환불하라"고 했다. 하지만 웹사이트에서 "환불을 원하면 더 많은 보증금을 내라"고 요구한 탓에, 남성은 환불을 위해 가상화폐를 입금해야 했다. 계속되는 환불 실패에 남성이 송금해야 할 보증금은 더 늘어났다. '사기'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돈을 퍼붓도록 만든 셈이다.

그 결과, 일인당 피해 금액은 평균 100파운드(약 18만 원) 정도로 조사됐다. 최대 피해액은 1만9,000파운드(약 3,408만 원)에 달했다. 텔레그래프는 "사기 집단이 거둔 수익의 대부분은 직원 급여로 지급됐으나, 일부는 우크라이나군의 전쟁 자금으로 쓰였다"고 설명했다.

전쟁의 그림자... 평범한 시민도 사기 범죄 가담

2년 5개월 동안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평범한 시민도 '스캠 사기'에 동조하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북부 하르키우의 야나(가명·29)는 2022년 2월 발발한 전쟁 이전만 해도 '러시아 남성 속이기'에 가담할 생각조차 못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하르키우를 탈환한 2022년 여름 화폐군대에 합류했다. 야나는 "러시아군이 하르키우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우크라이나인을 잔혹하게 살인하는 것을 목도했다"며 "그들의 폭력을 고려하면 (스캠 사기는) 내 양심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