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과 발전소 등 산업시설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설비 이상이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일으키는 터빈이나 석유화학회사에서 제품을 만드는 대형 압축기와 펌프 등이 고장 나면 전체 생산 공정이 멈추게 된다. 또 고장 및 오작동 등 설비 이상은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안전과 직결돼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더욱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설비를 사람이 일일이 점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많은 산업현장에서 설비 점검을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미처 점검하지 못한 설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인공지능(AI)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선 신생기업(스타트업)이 있다. 대표를맡고 있는 윤병동(54)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2016년 창업한 원프레딕트는 자체 개발한 AI로 각종 산업시설의 이상 유무를 자동 점검하고 문제 발생 시 해결책을 알려준다. 이를 가리켜 윤 대표는 "산업현장의 의사"라고 표현했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윤 대표를 만나 산업시설을 구하는 AI에 대해 알아봤다.
시작은 어느 날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이었다. "소변기 만드는 회사를 소개한 TV 프로그램이었어요. 소변기 출하 전 품질 검사 과정에서 장인이 고무 망치로 세 번 두드려 소리를 듣고 이상 유무를 판단하는 장면이 신기했어요. 장인이 은퇴하면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죠."
TV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통계와 공학 지식을 섞어 산업 설비의 신뢰성을 예측하는 연구를 했다. 그는 연구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의 설비 점검이 아날로그식으로 이뤄지는 것을 발견했다. "2,000대의 주요 설비를 갖고 있는 모 기업의 경우 여러 명이 한 달에 한 번 점검하다 보니 하루에 수십 개밖에 점검하지 못해요."
그는 수작업에 의존하는 산업 설비의 점검 및 운영관리(ONM)를 디지털로 바꾸는 것에서 해법을 찾았다. "사람을 보내지 않거나 사람이 하는 작업을 최소화하는 디지털화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죠."
이를 위해 개발한 것이 '가디원'이라는 AI 솔루션이다. 가디원은 AI가 각 생산 설비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이상이 발견되면 AI가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처럼 원인을 파악해 해법까지 제시해서 전문가의 의사 결정을 돕는다. "AI가 진단 보고서까지 만들어 전문가의 일손을 덜어줘요."
가디원은 산업 설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구성품에 맞춰 기업이 고를 수 있도록 모터, 터보, 변압기와 산업 자산을 디지털로 종합관리하는 PDX 등 네 가지로 구성됐다. "생산시설에 들어가는 전기의 90%를 소모하는 중요한 부품이 모터죠. 움직이는 설비에 모두 모터가 들어가요. 터보는 대형 회전체를 돌려요. 모터와 터보에 들어가는 전기는 공장 주변에 설치된 변압기에서 공급되죠. 그만큼 모터와 터보, 변압기는 생산시설의 핵심이죠."
향후에는 PDX 부문에 모터와 터보, 변압기 부문까지 합칠 생각이다. "스마트폰에서 여러 소프트웨어(앱)를 사용하듯이 PDX에 모터, 터보, 변압기 부문까지 넣어 통합자산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죠."
가디원의 심장은 자체 개발한 핵심 기술인 '테크셀'이다. 소프트웨어의 작동 원리인 알고리즘 집합체에 해당하는 테크셀이 '원솔루션'이라고 이름 붙인 AI를 움직인다. "테크셀과 원솔루션에 36개 특허가 걸려 있어요."
그렇지만 AI가 전부는 아니다. 가디원에는 수많은 산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설비 전문가들의 지식이 녹아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고 처방을 내리는 것은 AI만으로는 안 돼요. 산업 현장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죠."
이를 위해 윤 대표는 각 산업 분야의 설비 전문가를 채용하고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하며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했다. "전력설비를 다루는 한전KPS, 스위스의 기계 설비업체 ABB 등에서 근무한 전문가들을 채용했죠. 이들의 지식을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AI에 녹여 넣었어요. 이것이 우리의 강점이자 무기죠."
말은 간단하지만 전문가들의 머릿속 지식을 디지털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데이터 사일로 때문이다. 데이터 사일로란 자료와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폐쇄적인 현상을 말한다. "기업들이 산업 현장에서 나오는 자료를 절대 공유하지 않아요. 심지어 같은 기업에서도 공장끼리 자료 공유가 안 돼요. 한마디로 데이터 절벽이죠. 이를 전문가 채용과 협업을 통해 극복했어요."
그래서 윤 대표는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할 만하다고 자신한다. "경쟁 상대는 100년 이상 된 GE, 슈나이더, 애드버브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죠. 하지만 이런 기업들은 오랜 세월 구축한 시스템이 너무 방대해 쉽게 AI 솔루션을 내놓기 힘들어요. 유연성이 떨어지죠. 그런 점에서 후발 주자인 우리가 더 유리한 셈이죠."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 개발된 가디원은 발전, 제조, 정유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쓰이면서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E1 등 에너지 회사와 포스코, GS칼텍스, SK에너지, LG에너지솔루션 등 다양한 기업들이 고객사죠."
다음 달 PDX로 합쳐서 통합 솔루션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 제품이 나오면 고객사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자동차, 식품, 제약 등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4, 5개 기업들과 PDX 통합 제품 도입을 위해 접촉 중입니다. 이들을 통해 모든 산업에서 범용적으로 쓸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죠."
가디원의 모터와 변압기 부문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 인터넷 구독형 서비스로 제공된다. 터보는 기업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터빈은 국가기밀시설이라 데이터를 공공망으로 가져올 수 없어요. 그래서 설치형으로 제공하죠. PDX는 구독형과 설치 방식이 섞여 있어요."
실적은 코스닥 특례 상장을 위한 심사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어요. 올해 매출도 두 배 이상 성장하는 것이 목표죠. 아직은 적자이지만 내년에 상장하면 후년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것으로 봐요."
투자는 누적으로 490억 원을 받았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스톤브릿지벤처스, KDB산업은행 등에서 투자를 받았어요. GS와 LG에너지솔루션, 에쓰오일은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죠. 상장 전에 전략적 투자자를 추가로 유치할 계획입니다."
윤 대표는 인하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카이스트와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시간대와 메릴랜드대에서 교수로 일했다. 13년간 미국 생활을 한 뒤 2010년 귀국해 서울대에서 지금까지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AI 확산의 계기가 된 구글의 '알파고'가 나오기 전부터 일찌감치 딥러닝에 관심을 가졌다. 박사 학위도 딥러닝으로 받은 그는 2020년 스탠퍼드대학이 전 세계 690만 명의 학자를 대상으로 선정한 상위 2% 과학자에 뽑혔다. "2004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서 진행한 논문 심사에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다가 컴퓨터를 병렬로 연결해 연산 능력을 높이는 논문을 보고 흥미를 느꼈어요. 그때부터 딥러닝을 연구해 2014년 딥러닝으로 터빈 설비를 진단하는 박사 학위 논문을 썼죠. 이후 알파고가 유명해지면서 딥러닝 연구과제가 물밀듯 들어와 2016년 교원 창업을 했어요. 서울대의 경우 교원 창업을 하면 수익 일부를 학교에 주고 학교가 보유한 특허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요."
대학 교수를 하면서 기업을 경영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다. "사업이나 제품 개발은 교수로서 잘 모르는 영역이라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벤처 투자사들도 사업을 모르는 교수가 창업한 기업은 잘 안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죠. 그래서 변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반면 신기술 동향을 빨리 알 수 있는 것은 교수의 장점이죠."
앞으로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이를 위해 2022년 미국 휴스턴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조만간 미국 정유사 및 석유화학 기업들과 계약을 앞두고 있어요. 내년에 미국 사업을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죠."
그는 AI가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AI가 도입돼도 전문가는 사라지지 않아요. AI는 전문가를 도와 현장을 오가는 시간과 안전사고를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죠. AI 덕분에 남는 시간을 부가가치가 높은 일에 투입하면 국가 전체의 생산성이 올라가요. 그렇게 되면 주 4일 근무도 가능하죠. 출산율 감소로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적은 인력으로 산업을 움직이는 디지털화는 곧 국가의 경쟁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