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 대해 잘 알지 못 했던 두세 가지 것들 II

입력
2024.07.20 04:30
24면
<177> 국경 도시들에서의 삶, 폭력, 죽음

멕시코의 계절은 우기와 건기로 구분된다. 6월부터 10월까지 우기고 11월부터 5월까지 건기가 이어진다. 6월 말 멕시코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할라파(Xalapa)의 날씨는 대체로 청명했지만 오후에는 꼭 두어 시간씩 세찬 비가 퍼붓곤 했다.

머무르는 내내 렌터카 내비게이션이 "멕시코 남동부의 홍수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는데, 우기라 그러려니 싶다가 홍수 대비 인프라가 부족한가 정도의 질문을 떠올리는 게 다였다. 이후 할라파에서 멕시코시티로 이동하면서 보니 홍수는커녕 가뭄으로 바싹 마른 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지역에 따라 기후가 많이 다른지 궁금해졌다. 자료를 찾아보니 멕시코는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였다.

기후 난민들과 마약 카르텔의 도시들

멕시코는 지구 온난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여기에 수면의 온도가 평소보다 높아지면서 수증기 증발이 많아져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엘니뇨' 현상으로 수도 멕시코시티는 가뭄을 겪고 있었고,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급수까지 제한하고 있었다. 6월 초 치러진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물 부족 현상 개선책이었을 정도였다. 엘니뇨는 원래 2년에서 7년 정도 기간을 두고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지목한다.

기후 변화가 자연스러운 생태 환경의 변화가 아님은 물론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이들은 소규모 농업과 어업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북부의 도시들로, 다시 국경을 넘어 미국 도시들로 이동해 '불법 체류자'로서의 노동과 추방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야말로 '기후 난민'의 삶이다. 그리고 이들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가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는 와중에 날품팔이를 하며 '대기를 타는' 접경 도시들이 바로 마약 카르텔에 의해 점령되고 시민 및 여성에 대한 폭력이 횡행하는 곳들이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크리스천 퍼렌티(Christian Parenti)가 쓴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미지북스·2012)는 냉전기 제3세계 국가들을 장악한 군국주의적 폭력,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기후 변화가 한곳에서 만나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온 세계 곳곳의 지역 상황을 소상히 짚어낸 역작이다.

이 책에 따르면 멕시코의 마약 조직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이 코카인과 마리화나를 미국으로 유입시킬 때 운송 수단을 멕시코에서 바꾸는 것을 돕는 정도의 역할을 했다. 그랬던 멕시코의 마약 조직이 카르텔로 성장한 것이 1990년대 중반이었다. 미국 마약단속국이 콜롬비아 카르텔을 분쇄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면서부터였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예측하고서도 NAFTA 체결을 밀어붙였다. 당시 콜롬비아 주재 미국 대사의 말대로 "해당 협정을 이용한 무역 증가가 마약 밀수와 돈 세탁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보다, 수출을 위해 해외 시장을 확대하고 북미 국가들과 무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미국의 목표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국토 경계 내부의 토지와 물 소유권은 애초 국민에 속한다.”

얄궂은 사실은, 마약 카르텔이 점령한 북부 도시들이 멕시코 혁명기(1910-1917) 혁명군으로 투쟁했던 노동자들과 빈민들이 거점으로 삼았던 곳들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으로의 마약 유입이 쉽다는 이점(?)이 당시에는 군수품 획득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이점으로 작용했던 덕분이다. 혁명의 거점들은 어쩌다 마약과 폭력이 판치는 무법천지가 되었을까.

다른 혁명과 비교해 볼 때 멕시코 혁명의 독특한 점은 사회주의 헌법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경제적 근대화를 통한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목표를 설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혁명의 산물이면서 오랫동안 멕시코 정치계를 장악했던 ‘제도혁명당’(Partido Revolucionario Institucional, PRI)의 이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혁명을 제도화하고 그 제도를 통해 혁명을 이어나간다는 발상인 것이다.

"국토의 경계 내부에 포함되는 토지와 물의 소유권은 애초에 국민(la Nacion)에 속한다." 1927년 제정된 멕시코 혁명헌법 제27조의 첫 문장이다. 또한 혁명헌법 제123조는 1일 8시간 노동, 유아노동 금지, 여성노동 규제, 최저임금제, 동일직종 동일임금제, 조직의 권리, 파업권 등 노동자의 권리와 자본가의 의무 및 국가의 노사관계 중재권에 대한 자세한 규정을 담고 있었다. 이후 멕시코는 개혁적 이념을 통한 발전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모델로서, 개발도상국들의 희망으로 부상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그 정점이었다.

그랬던 멕시코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드러난 건 1982년 금융위기 때였다. 1970년대에 석유가 발견되어 생산에 들어갔는데 이는 멕시코 경제에 호재보다 악재로 작용했다. 성장이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이 커지는 상황에서 석유를 담보로 외채를 빌려 일으킨 경기 부양책은 더 심각한 인플레이션만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79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이자율을 대폭 올리자 유가가 하락했고 부채는 세계 최대 수준으로 커졌다.

결국 1982년 멕시코는 부채의 지불 유예를 선언했고 IMF와 그 외 세계 여러 은행들로부터 120억 달러의 신용 차관을 받는다. 이는 물론 경제 자유화라는 명목의 구조조정을 대가로 지불한 결과였다. 혁명헌법에 의거해 세워졌던 1,000여 개가 넘는 수많은 국영 기업과 기관들이 매각되었다. 이 중 많은 기관들이 지금 기후 난민이 되어 떠돌고 있는 농림어업민들의 생계와 관련된 조직들이었다.

신자유주의, 기후위기, 폭력: 인류의 미래?

1994년부터 발효된 NAFTA는 멕시코 경제 신자유주의화의 완성이었다. 이 과정에서 혁명헌법 제27조가 삭제되었다. 토지와 물의 소유권이 국민에 속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NAFTA는 경제발전 격차가 너무도 큰 국가들 간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그 중 하나가 접경도시들을 사실상 맞붙어 있는 미국 도시들의 '배후지'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이다. 미국 측 도시가 대형 물류센터와 멕시코 측 도시에 있는 공장단지를 통제하는 본부 지점들로 들어찬 값비싼 빌딩으로 가득한 곳이라면 멕시코 측 도시들은 공단과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임시 판잣집들 그리고 국경을 넘어 가려는 빈민들이 가득한 곳이다.

멕시코의 악명 높은 마약 카르텔들은 바로 이런 도시들에서 국가를 대신하는 통치의 주체로 등장했다. NAFTA로 마약 유입도 쉬워졌으니 이들이 활개를 치고 다닐 무대가 마련된 셈이었다. 이들에게는 폭력이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도구다. 걸리적거리는 존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살해하는 행위가 예외적 범죄가 아니라 유능함의 지표가 된 것이다. 곧 멕시코의 북부 접경 도시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 및 살해 상위권(?) 도시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페미니스트를 포함한 비판적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이런 경향이 일부 접경 도시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멕시코 전역 그리고 마약 카르텔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국가들로 확대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도시들과 국가들이 다국적 기업의 시장 지배를 보조하고 확장하는 수송기지일 뿐 아니라 선진국의 소비 시장을 노리는 마약과 같은 불법 상품과 서비스의 경유지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마약 카르텔을 부정적으로 언급하거나 진보적인 정책을 내건 후보들 수십 명이 살해되었다. 이는 마약 카르텔이 정부와 법 집행 기관 위에 있는 존재로 자신들을 과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멕시코만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신자유주의 및 기후 위기의 심화와 더불어 국가의 정당성이 약화되어가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현실이다. 우리는 이를 돌파해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멕시코는 이 질문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와 서한영교 작가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