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면 처치 곤란' 세탁소 옷걸이, 탄소 줄이고 돈도 버는 방법

입력
2024.07.17 04:30
19면
[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주민 실천단 제안에 생긴 서초구 탄소제로샵
아이스팩·쇼핑백 등 '다시 쓰기' 문화 확산 중
20만 개 재사용...나무 4357그루 심은 효과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벌써 이렇게 83코인, 8,300원 모았어요. 환경도 지키고 사장님도 멀쩡한 옷걸이를 다시 쓸 수 있으니 서로 윈윈(win win) 이득이죠."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미도세탁소를 찾은 반포4동 주민 나영란(58)씨는 뿌듯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며 '서초코인 애플리케이션'에 쌓인 코인을 자랑했습니다. 1코인당 100원 상당. 그가 집에서 들고 온 흰색 철제 옷걸이 스무 개를 세탁소 사장님에게 전달하고, QR코드를 찍자 옷걸이 한 개당 0.2코인, 총 4코인이 추가로 쌓였습니다.

드라이클리닝을 마친 옷들이 한가득 걸려있는 세탁소 한편의 상자에는, 나씨처럼 동네 주민들이 모아서 가져다준 옷걸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어요. 미도세탁소는 지난해부터 서초구에서 운영하는 '탄소제로샵'에 참여 중입니다. 탄소제로샵은 옷걸이나 쇼핑백처럼 다시 쓸 수 있는 깨끗한 물품을 주민들이 가져다주면 가게에서 재사용하는 주민 주도 자원순환 사업인데요.

재사용을 통해 탄소 배출은 줄이고, 가게는 물품 구매 비용을 소소하게 아끼고, 참여 주민과 가게 주인 양쪽 모두에게 서초코인도 지급되니 '일석삼조'인 셈이죠. 미도세탁소 사장님은 "손님들도 옷걸이 버리기가 나쁜데(번거로운데), 개당 150원, 200원씩 하니 저도 가져다주시면 좋다"면서 "한 달에 최소 100여 개 정도 들어온다"고 말했어요.

탄소 줄이고, 코인 받고, 물품 구매비 아낀다

쇼핑백이나 옷걸이 등 가게에서 받은 물건, 멀쩡한데 그냥 버리기 아까워 집에서 '다시 쓰기' 하신 경험 모두들 있지 않으신가요? 기자의 집에도 세탁소 흰색 철제 옷걸이, 이곳저곳 가게에서 받은 종이 쇼핑백과 비닐봉투, 신선식품과 함께 배달된 아이스팩 등이 많은데요. 그때그때 요긴하게 잘 쓰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너무 많이 쌓이면 처치 곤란이잖아요.

이때 재활용을 위해 분리배출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재사용'이 가능하다면 그 편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훨씬 더 좋습니다. 옷걸이를 예로 들어 재활용하려면 △집 주변 분리수거함에 분리배출하고 △재활용 업체 차량이 수거·운반해서 △옷걸이 겉면 플라스틱은 녹이고 고철류만 남기고 △철스크랩 등 재활용 고철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전부 다 거쳐야 하잖아요.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탄소가 배출되고요. 반면 멀쩡한 제품을 동네 안에서 '재사용'한다면 이동, 재생원료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더 줄일 수 있겠죠.

탄소제로샵은 이런 생각을 가진 동네 주민들의 제안으로 시작됐대요. 김순금(77) 푸른서초환경실천단 단장은 "10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집 근처 세탁소에 옷걸이를 돌려주기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이 더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구청에 사업화를 제안했다"면서 "크고 이론적인 환경 문제보다 당장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것부터 해보자는 마음"이라고 말했어요.

2021년 3개 동 100개소에서 시작된 탄소제로샵은 지난 연말 10개 동 400개소로 늘었고, 올해는 서초구 전체 18개 동 중 재건축을 앞둔 반포본동을 제외한 17개 동에서 550개소를 목표로 참여 가게를 확대 중이에요. 옷걸이 외에 카페 종이 트레이, 아이스팩, 비닐봉투, 호일 보냉팩, 쇼핑백, 종이 충전재, 뽁뽁이(에어캡) 등 총 8개 품목을 가게 특성에 따라 받고요.

서초구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지난해 수거된 물품은 총 20만3,328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만8,775㎏ 줄인 효과라고 해요. 30년생 소나무를 4,357그루 심은 것에 맞먹는 효과라고요. 가장 많이 모인 물품 단연 1위는 옷걸이(14만448개·개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132g)였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705g으로 가장 큰 아이스팩도 9,120개 모였습니다. 2021년 첫해에는 연간 7,507㎏, 2022년에는 1만9,721㎏ 감축했던 것과 비교하면 점점 참여 규모가 커지고 있어요. 이런 주민 참여형 자원 순환 사업이 더 많은 지역, 도시로 퍼진다면 좋겠죠.

지속가능성을 위한 아나바다 정신 되살리기

물론 '물품 재사용'만으로 기후위기를 막기는 역부족입니다. 앞선 '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연재 기사들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탄소중립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는 산업전환, '무탄소 발전'을 위한 에너지 혁신, 정치와 정책의 변화 등 거시적인 변화를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소제로샵처럼 일상 속 소소한 실천이 의미 있는 이유는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는 출발점, 인식 개선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이에 185명 실천단 단원들도 신규 탄소제로샵 발굴과 홍보뿐 아니라 환경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에너지 절약을 독려하며 '탄소중립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노력한대요. 김 단장은 한 예로 '서울시 에코마일리지' 정책을 꼽았는데요. 직전 2년 같은 기간 대비 전기·수도·도시가스·지역난방 등을 5% 이상 절감하면 1만~5만 마일리지(1만~5만 원 상당)를 적립해주는 제도입니다.

김 단장은 이런 에너지 절약은 '인식을 조금만 바꿔도 아주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기후행동'이라고 열띤 목소리로 설명했어요. "다들 겨울에는 안 쓰는 에어컨, 안 쓰는 세탁기나 전기밥솥 플러그를 그대로 꽂아두거나 방에 사람이 없는데도 불 켜놓는 경우가 많지 않냐"면서, 본인도 생활습관을 바꾼 뒤 매달 8만5,000원쯤 나오던 전기료가 3만 원대로 줄었다고 강조했죠.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에 등장한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을 기억하시나요, 혹은 알고 계시나요. 당시만 해도 국가 경제 회복을 위한 근검절약의 구호였지만, 기후위기가 미래 세대의 생존은 물론이고 당장 우리의 밥상 물가와 냉난방비를 결정짓는 시대에 다시금 '아나바다' 생활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싶네요. 저희 동네는 '탄소제로샵'이 없지만, 일상 곳곳에서 재사용이 가능한 물건이 무엇이 있을지 저도 찾아보려고요.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