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이 장관직을 마치고 1998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의할 때였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페르보마이스크에서 해바라기를 재배하는 농부로부터 한 통의 감사 편지를 받았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기 전 이 지역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80기와 핵탄두 800기가 보관돼 있었다. 페리 장관 등 미정부는 상원위원인 샘 넌과 리처드 루거가 발의한 '구소련 위협감축법안'(넌-루거법)에 20억 달러를 투입, 우크라이나의 비핵화를 추진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 규모의 핵보유국으로, 핵탄두 약 1,700발, ICBM 약 170발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핵무기를 소련으로 철거시키고 경제적 보상과 안전 보장을 약속했다. 199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미국, 영국,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보장하는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도 체결했다.
핵무기를 네 단계로 해체한 지역에는 환금작물(換金作物)인 해바라기를 심고, 조립식 주택을 건설해 삶의 터전을 닦았다. 그리고 이 농부는 해바라기밭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페리 장관에게 보낸 것이다. 이듬해 페리 장관은 밀러 주우크라이나 미국 대사가 보낸 해바라기씨를 받고 감동했다. (핵 벼랑을 걷다, 윌리엄 페리 회고록)
하지만 국제사회의 안전 보장 문서는 28년이 지나면서 휴지 조각이 됐다. 페리 장관과 넌-루거 핵폐기 프로그램의 종착지가 작금에 벌어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아니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크라이나가 해바라기보다 핵무기를 보유했다면 푸틴이 전쟁을 감행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다. 다만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 간단치는 않다. 핵무기 보유가 역설적으로 '공포의 균형(balance of horror)'을 형성하여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주 2회 1면 헤드라인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보도한다. 최근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로 폭파된 키이우 어린이병원의 참사는 참혹함 그 자체다. 양국 전문가들은 30개월에 접어드는 전쟁의 원인으로 근본, 중간 및 촉발 등 3대 원인을 지적한다. 근본 원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독립 불인정, 1990년 소련 해체 이후 '현상 유지'에 대한 서방과 러시아의 상반된 시각 등이다. 중간 원인으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 및 안보 딜레마 등이다. 마지막 촉발 원인은 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 영향력 회복 정책,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및 벨라루스의 러시아 종속 등이다.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이유는 2024년 북·러 군사동맹 조약 부활로 북한 비핵화가 요원해지는 신냉전의 국제정세 때문이다. 1961년 조약과 같은 북러의 군사적 밀착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킬 태세다. 제재로 비핵화를 끌어내는 외교적 해법도 한계에 부딪혔다. 한미 간의 확장억제 전략으로 안보를 지키는 방안도 북핵의 고도화로 안심할 수 없다.
바이든과 트럼프 후보 간 TV토론 이후 미국 정치는 혼돈 양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깊은 동맹'보다는 트럼프의 '거래 동맹'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동맹은 공동방위에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는 미 공화당의 새 정강 정책 발표로 트럼프 2기 외교안보정책의 서막이 올랐다. 힘을 통한 평화에다 국익 중심의 외교, 안보 핵심장비 미국 내 생산 등 과거와는 결이 다른 정책이 줄줄이 예고됐다. 구글의 구호처럼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Imagine the unimaginable)' 새로운 대미외교 안보 접근이 불가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