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내 동굴처분시설이 방사능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중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경주 방폐장이 운영을 시작한 지 10년 만이다. 그동안 원자력발전소의 임시 저장고에 쌓아 두었던 중준위 폐기물은 물론, 향후 고리 1호기 등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폐기물 처리에도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1일 열린 제197차 회의에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신청한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건설·변경 허가안’을 의결했다. 이번 의결로 경주 방폐장 내 동굴처분시설에서 처분 가능한 농도 제한치와 총 방사능량이 중준위 방사성폐기물(방폐물) 기준에 맞춰 상향됐다.
방폐물은 오염 정도에 따라 고준위, 중준위, 저준위, 극저준위로 분류된다. 경주 방폐장의 1단계 시설인 동굴처분시설은 중준위 방폐물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건설됐지만, 2014년 12월 운영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저준위 방폐물만을 처분해왔다. 시설의 처분 기준이 건설·운영허가를 받은 2008년 당시 법령에 따라 저준위 방폐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주민 설득 등을 거쳐 28년 만에 어렵게 마련한 시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도 반복돼왔다.
원자력환경공단은 2017년 9월 시설의 처분 농도 제한치를 상향하는 내용의 변경 허가를 요청했다. 그런데 최종 허가를 받기까지 약 7년이 걸렸다. 안전성 재평가, 방폐장 폐쇄 후 관리 기간 변경 등 복잡한 심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심의 과정에서 오간 질의응답은 983건, 안전성분석보고서와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등 변경된 서류는 1,737건에 달한다.
이번 의결로 경주 방폐장에 중준위 방폐물을 처분할 수 있게 됐지만, 향후 원전 해체 등으로 늘어날 방폐물의 안전한 처리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2030년까지 200리터 드럼 약 22만 개 수준의 방폐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준위 방폐물 처분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경주 방폐장 1단계 동굴처분시설의 경우 지난달까지 200리터 드럼 2만9,865개에 달하는 방폐물을 반입해 이미 처분 가능 규모의 28%를 채웠다. 2022년 8월 경주 방폐장 내에 동굴처분시설과 별도로 표층처분시설 건설이 시작됐는데, 이는 저준위 방폐물 저장에 초점을 맞춰 설계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