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은 경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올해 11월 실시될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첫 TV토론이 열린 직후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내놓은 사설 제목이다. 다음 달 열릴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될 현직 대통령에게 친민주당 성향 매체가 ‘사퇴하라’는, 극히 이례적이고 도발적인 요구를 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실제로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가 교체되기는 쉽지 않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물러나라고 외친 NYT의 기개다. 아마도 바이든이 트럼프를 이기지 못하면 미국과 세계의 미래가 위태로워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 대는 트럼프가 단지 바이든 대통령보다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자신 있어 보여서 승리한다면, 이는 단지 미국인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건 분명하다.
NYT의 판단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NYT가 정말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좌고우면 않고 현재 최고 권력자에게 ‘돌직구’를 던질 수 있는, 흔치 않은 매체라는 점을 언론인으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NYT는 오래전부터 세계 언론이 부러워하는 ‘모범 사례’였다. 인터넷으로 무료 뉴스가 공급되며 유료 종이신문 구독자가 급감하고 수많은 신문사가 사라져 갔지만, NYT는 일찍부터 디지털 혁신을 시도하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디지털 유료화에도 성공했다. 다양한 분야의 버티컬 콘텐츠가 디지털 유료 독자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고 분석된다.
하지만 ‘돈 되는 정보’를 주는 경제지도 아닌데, ‘매달 이 매체의 뉴스에 구독료를 지불하겠다’고 마음먹은 독자를 1,000만 명이나 확보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무엇보다 언론의 본령에 충실한 태도가 세계인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기자들은 전쟁의 참상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하고 그림자 속에서 워싱턴 정가를 움직이는 ‘실세’를 파헤친다. 논설위원들은 진영을 불문하고 날카롭고도 묵직한 비판을 던진다. 1896년 창업 이래 ‘NYT는 상업적 기업이 아니라 책임 있는 공적 기관’이라는 신념을 5대째 지켜 온 옥스-설즈버거 가문도 NYT의 저널리즘을 권력으로부터 수호하는 든든한 ‘뒷배’ 역할을 했다.
쉽게 찾기 어려운 진실을 파헤치고 권력에 ‘성역 없는 비판’을 하는 것은 언론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태도이지만, 의외로 그런 언론사는 많지 않다. 당장 우리나라 언론만 봐도 그렇다. 극단적 진영 논리에 갇혀 내 편의 잘못은 감싸고 상대편은 사실 왜곡까지 해 가며 비난하는 매체가 수두룩하다. 반면 분명 더 큰 잘못을 한 쪽이 있는데도 기계적 균형만 앞세워 판단을 유보하며 언론으로서 영향력과 존재감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곳도 있다.
사실 왜곡을 밥 먹듯 하고 대안적 세계관을 만들어 국민을 현혹하는 유튜브 채널이 설치게 된 데는 레거시 미디어 스스로의 잘못도 있다. 이 칼럼을 쓰고 있는 기자 역시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미국 정가에 충격을 준 NYT 사설을 다시 한번 읽으며, 항상 성찰하고 반성하는 자세로 부끄러운 언론인이 아니라 신뢰받는 언론인이 되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