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해고한 사건에서, 일본계 기업 아사히글라스가 이 해고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고 조치 9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해고 노동자 23명이 아사히글라스 한국 자회사인 AGC화인테크노를 상대로 낸 노동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11일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에게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를 하면서 자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화인테크노는 디스플레이용 유리를 제조·판매하는 회사로, 노동자들이 소속됐던 회사 GTS에 자신들이 운영하던 공장 글라스 기판 제조 공정 일부를 도급을 줬다. 노동자들은 화인테크노 공장에서 공정 일부 업무에 종사했다. 문제는 2015년 6월 화인테크노가 GTS 소속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문제 삼아 도급계약을 해지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GTS는 문자 한 통을 달랑 보내 노동자들을 일괄 해고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실제 아사히글라스의 지휘·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파견법에 따라 직접 고용돼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들이 불법파견 관계에 있었다면서 아사히글라스 소속 노동자임을 확인해 달라는 취지였다. 파견 노동자는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현장에서 원청의 지시를 받아 일한다. 최대 2년까지만 사용할 수 있고, 현행법상 고용 상태가 2년을 초과하면 직접 고용해야 한다. 그리고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업무는 파견 대상이 될 수 없다.
반면에 도급계약을 맺으면 하청업체 지시를 받아 일하고, 원청은 직접 고용 의무를 지지 않는다. 불법파견 문제는 외형상으로 도급계약을 맺고 실질적으로 업무 지시를 받으며 파견된 경우 생기곤 한다. 불법파견이 인정되면 원청은 직접 고용 책임이 생긴다.
1심과 2심에 이어 이날 대법원 역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GTS 현장관리자들의 역할과 권한은 업무상 지시를 전달하는 정도에 그친 점 △GTS는 설립 이후 화인테크노로부터 도급받은 업무만 수행하고 도급계약 해지 후 폐지된 점 △화인테크노 생산 계획에 따라 GTS 노동자들의 작업·휴게시간이 정해지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이 이날 판결한 아사히글라스 해고 관련 다른 사건 2건에서도 모두 파견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는 취지의 결론이 나왔다. 형사 사건을 맡은 같은 재판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GTS 법인과 대표, 아사히글라스 법인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불법으로 파견 노동자를 사용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화인테크노가 GTS와의 계약을 해지한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재판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화인테크노가 중앙노동위원회 구제 결정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화인테크노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판결로 해고 노동자들은 9년 만에 복직의 길이 열렸다. 선고 직후 전국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직접 교섭할 수 있는 당사자 지위에 있다는 점을 확인받았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면서 환영했다.
미쓰비시 계열인 아사히글라스는 세계 최대의 유리 회사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