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순직과 관련해 대통령실 외압 의혹의 중심에 있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놓고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이 충돌했다. 그를 구하기 위한 로비의 배후에 김건희 여사가 있다는 의혹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자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인 '최순실 태블릿 PC'에 견주며 "윤 정부의 국정농단"이라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양측의 대립이 진실 공방으로 가열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10일 공지를 통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자 이모씨가 'VIP에게 내가 얘기하겠다'며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에 나섰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 대통령실은 물론 대통령 부부도 전혀 관련이 없다"면서 "근거 없는 주장과 무분별한 의혹 보도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하며,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날 JTBC 등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는 변호사 A씨와의 통화에서 "임 사단장이 사표를 낸다고 B씨(제3의 인물) 전화가 와서, 내가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통화는 국방부 검찰단이 당초 해병대 수사 보고서의 결론과 달리 임 전 사단장의 혐의를 제외한 채 사건을 경찰에 이첩해 대통령실 수사 개입 의혹 논란이 불거질 때 이뤄졌다. 통화에서 'VIP'를 거론한 이 전 대표는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의 핵심 당사자이자 해병대 출신이다.
윤 대통령은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순방 중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이 즉각 대응에 나선 건 야권의 윤 대통령 탄핵 움직임과 맞물려 사안이 급박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환기시키는 한편,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주가조작범의 로비에 의한 국정농단'으로 규정하며 압박수위를 높였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및 원내대표는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면, 주가조작 공범이 구명로비 창구로 삼았을 대상이 김 여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안 아닌가"라며 "대통령이 임성근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진상 규명을 방해했던 이유가 명확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아온 채 상병 특검법 통과 의지를 다졌다.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 부부 방탄을 위해 묻지마 거부권을 남발하고, 경찰은 꼬리 자르기 면죄부 수사를 했다"며 "진상 은폐 의혹으로 인한 국민적 분노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정권 전체를 폐허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민수 대변인은 논평에서 "VIP를 언급하며 임성근 전 사단장을 구하겠다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이 말한 대로, 대통령과 정부가 움직였고, 경찰 수사 역시 불송치로 끝났다"며 "주가조작범의 로비에 의한 국정농단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하고, 이제는 언론까지 겁박하고 나선 후안무치한 임성근 전 사단장의 뒷배도 김 여사다. 기승전김건희로 모든 의혹이 흐르고 있다"며 김 여사를 정조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