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장마에는 인어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입력
2024.07.12 13:00
11면
조예은 소설 '입속 지느러미'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장마다. 비를 좋아했던 때도 있던 것 같은데, 직장에 다니게 된 뒤로 싫어졌다. 그래도 조도 낮은 조명을 켜두고 빗소리를 듣는 건 아직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때 누워서 하는 독서가 참 달다. 마침, 휴가를 맞아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조예은 작가의 ‘입속 지느러미’를 읽게 되었다. 마침, 책 속도 장마처럼 축축했다.

‘입속 지느러미’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해 여름에는 폭우가 쏟아졌고 선형은 세 이름을 떠나보냈다. 강민영, 이경주 그리고 피니.” 소설 속 주인공 ‘선형’은 대학 시절 작곡 동아리에서 만난 ‘경주’의 목소리를 듣고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노래를 단 한 사람의 목소리로만 듣길 바라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지’라고. 선형은 자신이 만든 노래를 경주의 목소리로 듣기 위해 경주와 밴드를 한다. 그러나 경주의 배신에 밴드는 와해하고, 선형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그즈음 선형의 삼촌 ‘민영’이 죽으며 선형 앞으로 건물을 하나 남긴다. 선형은 그 건물의 지하실에서 인어 ‘피니’를 만난다. 그리고 이내 피니의 목소리를, 피니를 사랑하게 된다.

피니를 사랑하는 선형의 모습은 지독할 정도로 집요하다. 선형은 밥을 먹는 것조차 잊는다. 피니의 목소리 외의 모든 소리는 소음처럼 느끼며 오로지 피니 곁에만 있으려 한다. 피니와 함께 있는 주인공은 종종 자기 자신을 잊고, 피니의 목소리를 위해선 무엇이든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의 도입부에서 작가가 말해 주듯이 선형은 결국 피니를 떠나보낸다.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이해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다 상관 없어져.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지. 어차피 끝내 알 수 없을 테니까. 나 아닌 모든 존재는 결국 미지의 영역이니까.”

‘입속 지느러미’는 인어라는 환상적인 존재를 가져와 우리의 한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에 모든 것을 내어주던 시절. 그러나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기에 전부를 투신할 수 있던 시절. 그리고 결국 그 모든 것을 떠나보냈기에 비로소 완성된 시절. 우리가 지나온 그 시절은 인간을 홀리게 한다는 인어의 목소리와 어딘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장마고, 창밖에도 책 안에도 비가 내린다. 비를 좋아했던 시절도 있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어느 날의 미래에서 나를 바라본다. 그때도 조도 낮은 조명 아래에서 하는 독서를 좋아하고 있을까. 시절은 지나간다. 우리는 많은 것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우리는 계속해서 시절을 통과하는 중이라는 거다. 인어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것 같다가도 나의 귓속에 오래도록 머문다. 인어의 귀소본능처럼. 시절의 기억들처럼.

송지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