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이젠 안 할까 합니다" 했던 권율이 '커넥션'으로 마음 돌린 이유

입력
2024.07.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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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를 섬뜩하게 연기 
'커넥션'의 마약 파는 검사 박태진 역
"악은 언제나 주변에 있지 않나...
평범한 사람과 똑같은 표정으로 연기"
다작 배우..."원동력은 자격지심"

윤리를 저버린 '패륜남'. 최근 종방한 SBS 인기 드라마 '커넥션' 속 권율(42)의 모습이다. 극에서 그는 마약을 만들어 파는 검사 박태진을 연기했다. 계획이 틀어지자 친구 살해까지 공모한다. 권율은 이마에 시퍼렇게 핏줄이 곤두선 채로 배역의 악의를 시종일관 섬뜩하게 연기했다. 그룹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악행을 서슴지 않는 재벌 2세(드라마 '귓속말')부터 연쇄살인범('보이스' 시즌 2, 3)까지. 선하고 여려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그는 악역을 맡았을 때 유독 주목을 받았다.

비결이 뭘까. 악역을 준비할 때 권율은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역으로 광기를 보여주고 세상을 떠난 호주 배우 히스 레저의 다큐멘터리를 찾아본다.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걸음걸이와 표정으로 연기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악은 우리 주변에 늘 평범하게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악역 연기에 '진심'이었던 권율은 '커넥션' 출연 제안을 고사하려 했다. "출연 제의 받았을 때 '더 이상 악역은 안 할까 합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악역 이미지가 너무 굳어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김문교 감독님과 만나 얘기를 하고 8회까지 나온 대본을 읽고 마음을 돌렸어요. 악역이지만 여러 감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배우로 증명 고민" 잠 못 이룬 사연

권율은 2007년 시트콤 '달려라 고등어'에 출연한 뒤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일은 풀리지 않았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서른이 되기 직전 두 달여 동안은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흔들리면서도 배우로서의 길을 쫓던 청년 권율의 뚝심은 결국 통했다. 2014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아들 역을 맡아 얼굴을 알렸고 이후 12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드라마에 출연했다. 다작의 원동력을 그는 "자격지심"이라고 설명했다. "배우로 증명해야 한다는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말이 끝날 듯 안 끝나죠?" 알고 보면 '흥부자'

'커넥션' 속 싸늘한 이미지와 달리 현실의 권율은 유머가 넘쳤다. "말이 끝날 듯 안 끝나죠?"라며 인터뷰 50여 분 동안 조곤조곤 쉼 없이 말을 이었다. 배우 하정우, 정경호와 대학 시절 교내 코믹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할 정도로 유쾌했던 그는 최근 조카를 데리고 극장에 가서 영화 '인사이드 아웃2'를 봤다. "'불안' 캐릭터가 정말 좋았다"며 잠시 동심에 젖은 그는 맡고 싶은 배역으로 '백수'를 꼽았다.

"방송 중인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JTBC)를 비롯해 법조인 역만 네 번 이상 했더라고요. 이젠 정장 벗고 트레이닝복 입고 널브러져 있는 한량 역할을 좀 하고 싶어요. 그간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선 늘 짝사랑만 했는데 제대로 된 로맨스도 한번 해보고요, 하하하."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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