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끌려간 것도 서러운데 간첩 누명?"... 검찰, 납북어부 사건 재심 청구

입력
2024.07.09 18:16
1971년 작업 중 북 경비정에 나포
북한서 풀려난 뒤엔 조사받고 처벌

1970년대 북한군에 끌려갔다가 생환했으나 국내에서 반공법 위반 사범으로 몰렸던 납북 귀환 어부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검찰이 2차 직권재심 절차에 착수했다. 지난해 1차 직권재심 청구에 이어 명예회복 조치 대상이 늘었다.

대검찰청은 9일 납북 귀환 어부 103명에 대해 직권재심 청구 및 기소유예 처분 변경 절차에 착수하도록 관할 검찰청(춘천지검, 춘천지검 강릉지청,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지시했다. 승운호·고흥호·탁성호·대복호·6해부호·2승해호·명성3호 등 어선 7척에 탑승했던 납북 귀환 어부 160명 중, 앞서 재심을 청구한 57명을 제외한 어부들이 대상이다.

이들은 1971년 8~10월 동해에서 어로작업 중 북한 경비정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이듬해 9월 귀환했다. 이들은 남으로 돌아온 직후 합동심문반에서 2주간 심문을 받았고, 관할 경찰서에 인계돼 구금 상태로 수사받은 뒤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반공법·국가보안법·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 등 형사처벌을 받았다.

납북 어부들이 형사처벌을 받은 건 당시 정부의 무리한 납북 방지 조치 탓이다. 박정희 정부는 납북을 막기 위해 어로저지선을 남쪽으로 대폭 끌어내렸고, 1968년 11월 '어로저지선을 넘어 조업하다 납북된 선원에 대해서는 반공법을 적용해 구속하겠다'는 방침을 선포했다.

검찰은 당시 처벌받은 어부 160명에 대한 형사사건부와 판결문 등을 검토해, 이들이 구속영장 집행 전까지 법률적 근거나 영장도 없이 불법으로 구금된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간첩' '빨갱이' 등으로 낙인찍혀 취업하지 못하는 등 정상적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했고,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점을 파악했다. 이에 대검은 이들이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특히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납북 어부들에겐 불기소로 처분을 변경하도록 했다. 납북 어부 대상 기소유예 처분이 불기소 처분으로 변경된 건 처음이다.

앞서 대검은 지난해 5월 납북됐다가 1969년 5월 28일 귀환한 기성호 등 선박 23척의 어부 100명에 대해서도 직권재심 청구를 지시했다. 검찰은 이후 유족이 재심 청구에 동의한 78명에 대해 직권재심 청구에 나섰고, 현재까지 59명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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