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아르헨·튀르키예의 공통점

입력
2024.07.09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요사이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 식당과 관광지 등에서 외국인에게 더 비싼 요금을 요구해 불쾌했다는 여행담이 늘고 있다. 이런 ‘이중 가격’이 확산하자 일본 언론들도 “가격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가능하다면 이중 가격 표시는 법률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두둔한다. 동남아나 지중해 연안 등지에 관광이 주 산업인 나라들에서나 볼 수 있는 외국인과 내국인 이중 가격제가 한때 첨단 제품 수출로 전 세계 돈을 빨아들이던 일본에 빠르게 자리 잡는 모습이다.

□ 일본 언론은 이런 이중 가격제 확산이 외국 관광객이 지나치게 몰려들어 발생하는 ‘오버 투어리즘’ 탓으로 돌리지만, 실상은 엔화의 급락으로 일본인 지갑이 얇아진 상황에서 해외여행객 관련 산업만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엔화는 38년 만에 달러당 161엔을 돌파하는 등 바닥을 뚫고 추락 중이다. 슈퍼 엔저로 수입 가격이 오르자 물가도 급등하고 내수가 얼어붙어 올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지난해 회복세를 보이던 경제가 침체로 돌아섰다.

□ 일본 정부는 장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세 개의 화살’이라 불리는 모험적 정책을 감행했다. 엔화 가치를 낮춰 수출을 늘리고, 이에 따른 물가 상승은 수출로 이익을 늘린 기업의 임금 증가가 앞지르면 내수가 회복되면서 상쇄돼 경제가 성장 궤도에 오를 것이란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엔화 가치를 낮추고 물가 상승까지는 실현했지만, 마지막 결정적 화살인 임금 상승이 뒤따르지 않으며 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 슈퍼 엔저의 근본 원인인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5.4%포인트)를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리기에는 일본 경제가 너무 허약하다.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50%로 세계 최악이다. 저금리로 연명하는 부실기업이 6개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최대로 올릴 수 있는 금리가 0.25%포인트라고 본다. 올해 3분기 엔화가 175엔까지 더 내려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말 도이체방크가 “일본 엔화는 아르헨티나 페소나 튀르키예 리라와 같은 리그”라고 평가했는데, 그 평가가 비아냥만은 아니었다.

정영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