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은 9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한미동맹의 상징인 주한미군의 규모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수시로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하며 동맹 한국의 부담을 강조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과는 결이 다르다.
플라이츠 부소장은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서실장을 지냈다.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에서 근무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정보·국방 분야 요직에 등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가 이끄는 AFPI는 향후 '트럼프 2기 정부'의 국정과제를 제안하는 '미국 안보에 대한 미국 우선 접근법' 보고서를 지난달 발간했다. AFPI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참모들이 주축인 싱크탱크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고위직 후보자들에게 국정과제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방한 중인 그는 트럼프 캠프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단서를 달면서도 "미국 보수가 말하는 '미국 우선원칙'이 고립주의가 아님을 동맹국가들에 설명하고자 한다"며 취재에 응했다. AFPI의 중국 전문가인 스티브 예이츠 선임연구원도 자리를 함께했다.
플라이츠 부소장은 "오늘날 동아시아 안보정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보다도 위험해졌다"며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북한과 다시 대화에 나서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위비분담금은 한국 쪽 인상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분담비용 문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국가들의 안보 분담을 늘려야 한다는 점이 더 크다"고 부연했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부각되는 '핵무장론'을 경계했다. 그는 "북핵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킬 유일한 최선의 방책은 미국의 핵우산 강화"라면서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억제력 그 자체이며, 핵확장억제를 강화해 나가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AFPI 보고서는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안보전선으로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의 이른바 '새로운 4개 축(axis)'을 꼽았다. 플라이츠 부소장은 "북한과 러시아가 새로운 관계에 합의하면서 새 축의 연대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선 결국 강경하면서도 대화에 열린 일종의 '거래 외교(transactional diplomacy)'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러 군사밀착을 저지하고, 중국과 러시아 간 연대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러시아,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현재 미국과 동맹국들의 우크라이나 전쟁 전략은 전선을 바꾸지 못하고 소모전이 되고 있다"면서 "우선적으로 현 전선을 동결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중·대이란 접근법은 대화보다 강경 대응에 무게를 뒀다. 예이츠 선임연구원은 "최근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동아시아에서 이웃 국가에 공세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건 중국"이라며 "동맹국들과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북 억제에 국한돼 있다고 할 수 없다"면서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전쟁교리를 조정했고, 각 파견군은 상황에 따라 더 넓은 영역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AFPI 보고서는 '미중 전면 충돌이 발생하면 주한미군이 중국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이란 대선에서 개혁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나 플라이츠 부소장은 "이란 정치제는 왜곡(rigged)됐다"며 "페제시키안이 대통령이 돼도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더구나 이란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부유해졌고, 그것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이란의 대리세력 성장으로 이어졌다"면서 "이를 차단해야 하고, 이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화에 나설 수는 있지만 현재로선 회의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