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병원을 이탈한 모든 전공의에 대해 복귀 여부를 불문하고 의사면허 정지를 포함한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사직하는 전공의에게는 9월부터 타 병원에서 수련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도 부여한다. 5개월째 계속되는 의료 파행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고육책이자 사실상 최후통첩이다. 다만 전공의들이 ‘증원 백지화’ 없이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이번 대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오늘 부로 모든 전공의에 대해 복귀 여부에 상관없이 행정처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6월 4일 부로 전공의 사직 허용, 복귀자에 대한 처분 면제 조치를 내놓았는데도 복귀율이 미미하자, 미복귀에 따른 처분마저 면제해 전공의들이 복귀든 사직이든 거취를 결정하도록 독려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체 전공의(1만506명) 가운데 근무자는 986명(9.4%), 사직자는 63명(0.6%)에 그친다.
의료계 일각에선 전공의들이 이탈한 2월부터 행정명령 자체를 무효화하라고 요구하지만, 조 장관은 “법에 따라 정당하게 이뤄진 조치라 취소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행정처분 중단이 아닌 철회인 만큼 향후에 효력이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직하는 전공의들이 불이익 없이 다른 병원에서 수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규정도 완화한다. 해임·사직으로 중도 이탈 시 1년 이내 동일 과목·동일 연차 복귀를 제한했던 지침을 바꿔서 올해는 9월 수련을 시작하는 전공의 추가 모집에 응시할 수 있도록 특례를 적용하기로 했다. 원래 9월 채용은 전공의 확보율이 낮은 필수의료 일부 과목에 한해 진행됐으나 올해는 결원이 생긴 모든 과목에서 뽑는다.
복귀한 전공의와 다른 병원으로 옮길 전공의를 위해 전문의 취득 기회도 보장한다. 전공의 연차 산정 기준은 3월인데 올해는 2월 말부터 수련 공백이 발생한 탓에 수련 기간 미달로 연초 전문의 시험 응시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9월 기준으로 연차를 산정해 수련 종료 시기에 맞춰 별도 시험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연차별, 복귀 시기별 상황에 맞춘 구체적 구제 방안은 추후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달 22일부터 시작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각 수련병원별로 15일까지 사직 처리를 완료하고 결원을 확정해 달라고 주문했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을 제시하면서 전공의에게 최후통첩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장관은 “이탈하지 않은 전공의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거라 생각한다”면서도 “중증 응급환자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고 전문의가 제때 배출되도록 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다는 판단 아래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특혜 논란과 비판 여론에도 원칙을 접고 두 차례 대사면 조치와 전폭적인 구제책을 제시하면서 전공의들이 행동 변화를 보일지 주목된다. 그간 사직도 복귀도 않는 전공의 때문에 곤란을 겪던 병원들이 본격적으로 사직서 수리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 거취에 대한 압박도 커지고 있다. 서울 지역 대학병원 원장은 “이제는 병원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전공의 없는 진료체계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복귀하지 않으면 사직서 수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종합병원 원장도 “일도 안 하면서 정원만 차지하고 있으면 인력 충원을 못한다”며 “사직과 복귀 둘 다 거부하면 파면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가 실효성 있을지를 두고 전망은 엇갈린다.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 데다 사직 후 시험을 거쳐 이직하는 것보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는 점에서 복귀자가 늘지 않겠냐는 긍정적 전망도 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오히려 지방병원 전공의들이 수도권으로 옮겨가면서 지역의료 공백이 커질 수 있고,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 인기 과목 경쟁만 치열해지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5대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가뜩이나 필수의료 전공의가 부족한데 상황이 더 악화될까 걱정된다”며 “현장을 지킨 전공의와 복귀 전공의, 추가 모집한 전공의 사이에 갈등과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번 조치가 전공의 복귀보다는 국면 전환에 목표를 두고 있는 만큼 정부가 후속 대책 마련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도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을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연속근무 상한을 24시간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지역의료·공공의료·일차의료 등을 두루 경험하는 네트워크 수련체계, 전공의 지도 담당 전문의 등을 도입한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정부는 전공의 복귀에 연연하지 말고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수가 체계 개혁, 수련체계 개선에 속도를 내는 방식으로 의료 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