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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온 책 중에 최근 다시 읽어본 책이 있다. 데이비드 즈와이그의 '인비저블'이란 책이다. 인정이나 명성을 제1가치로 두지 않기에 일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 최고의 인재로서 어디서든 성공을 거둘 자질을 갖추었지만, 명성과 보상보다 내적 목표를 지향하는 조용한 엘리트들. 저자는 이러한 인비저블의 공통점으로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치밀성, 그리고 무거운 책임감, 이 세 가지를 들었다. 우연히 필자는 비슷한 시기에 몇 명의 '사회적 기업가'를 만났었는데, 조용하기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큰 울림을 주는 이들이야말로 즈와이그가 명명한 '인비저블' 기업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첫 번째 기업은 인지능력이 낮아 학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 경계선 지능,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 한 어르신 등 이른바 '느린 학습자'의 정보 평등과 실질적 문맹 개선을 목표로 하는 '피치마켓'이란 사회적 기업이었다. 일반 학습자들은 유소년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책을 읽고 이해하게 되는데, 느린 학습자들은 학습역량 차이로 성인이 돼도 이해할 수 있는 도서가 아동용 동화책밖에 없다고 한다. 이러한 콘텐츠 부족은 정보 격차의 주원인이 되고, 이는 일반인과의 소통단절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피치마켓은 느린 학습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 콘텐츠의 개발·교육을 미션으로 삼게 됐다. 2014년도에 느린 학습자를 위한 '쉬운 글쓰기 연구회'를 구성했고, 이듬해에 민간 최초로 느린 학습자를 위한 쉬운 문학책을 출간하면서 피치마켓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사업영역은 크게 세 가지인데, △느린 학습자용 콘텐츠 개발 △이들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 개발 및 교육 △특수교사 네트워크 구축 및 느린 학습자용 공간(도서관) 운영이었다. 그 결과, 다년간의 노력으로 피치마켓이 발행한 도서가 '네이버 책' 베스트셀러에 다수 선정됐고, 특수교육용 국어교과서에 수록되는 등의 성과를 만들었다. 실제 학습에서도 느린 학습자의 문해력이 14%나 향상되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두 번째는 봄날의 햇살 같은 사회적 기업인 '스프링샤인'이었다. 이들이 풀고자 하는 사회문제는 발달장애인의 예술적 재능을 발굴해 이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현재 국내에는 약 250만 명의 등록 장애인이 있는데, 이 중 10%인 25만 명이 발달장애인이라고 한다. 이들의 고용률은 20%에 불과하고, 설사 고용이 됐어도 3개월 이내 퇴사 비율이 50%가 넘는다고 한다.
이를 위해 스프링샤인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예술가 직무를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었고, 그 결과 도예강사, 마술사, 피규어 작가, 회화 작가, 웹툰 작가 등의 직무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2015년 지노 도예학교로 출발해 현재 11명의 예술작가, 9명의 훈련생과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이 작업을 '원석'을 발굴해 '보석'으로 가공하는 일로 부르고 있는데, 발달장애인을 어엿한 예술가로 키워 내는 데 최소 1~3년이 걸린다고 한다. 시간이 간다고 저절로 보석이 되는 것은 아니며,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함께하는 인내력으로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만들어 간다.
끝으로, 느린 학습자 학부모의 인터뷰를 공유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우리 아이는 글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이해하지는 못해요"라고 했던 것이 3년 후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가 검정고시에 합격했어요"라고 하는 기적 같은 변화를 만들어 가는 이들이야말로, 인비저블 기업가, 조용한 영웅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