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박한 일정 때문에 홍명보 선임"... 축구협회 절차적 정당성 문제 지적 봇물

입력
2024.07.0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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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총괄이사의 전력강화위원장 대리, 규정엔 없어
반토막 난 전력위... 절반의 동의, 정당성 가질 수 있나


대한축구협회가 홍명보 울산HD 감독을 A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배경을 공개했다. 빌드업을 중시하는 전술과 '원팀' 정신을 이끄는 리더십, 감독으로서 성과 등을 홍 감독 선임 이유로 꼽았지만 일각에서는 절차적 정당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A대표팀 감독선임 권한을 가진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은 물론, 위원들이 대거 사퇴한 와중에 별도 분과위 위원장 혹은 기술총괄이사가 이를 대신할 수 있냐는 지적이다.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겸 기술발전위원장은 8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하는 새로운 축구대표팀 감독에 홍 감독을 선임했다"며 2027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을 맡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긴박했던 4일... 귀국 후 곧장 홍명보 만나 설득

홍 감독 선임은 매우 긴박하게 이뤄졌다. 이 총괄이사는 2일 유럽에서 다비드 바그너, 거스 포옛 등 최종 후보에 오른 외국인 감독 2명과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으나 이들의 축구 철학이 빌드업을 통한 기회 창출을 꾀하는 한국 축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 5일 귀국 후 곧장 홍 감독을 찾아갔다. 홍 감독이 "절차상 온 거냐. 그 안에서 얼마나 나를 평가한 거냐"고 물었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만남이었다는 게 이 총괄이사의 설명이다.

이 총괄이사는 "홍 감독은 최종적으로 압축된 후보 3인 중 전력강화위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며 "왜 홍 감독이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지 설명했고, 축구협회가 확립한 축구 철학과 경기 모델을 직접 이끌어주십사 몇 차례 부탁한 결과 6일 오전에 홍 감독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왜 홍명보인가... 전술·리더십·감독으로서 성과

이 총괄이사가 밝힌 홍 감독 선임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우선 빌드업 등 전술적 측면이다. 홍 감독이 이끄는 울산은 작년 데이터상 기회 창출에 대한 득점이 K리그 1위, 빌드업 1위, 압박 강도 1위를 차지했다. 활동량은 10위권이었는데, 이 총괄이사는 이를 "효과적으로 뛰면서 경기한 것"이라 해석했다.

리더십도 주된 요소 중 하나다. 홍 감독은 울산을 이끌며 '원팀, 원스피릿, 원골(목표)'을 강조해왔는데, 대표팀에도 이런 부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총괄이사는 "(파울루 벤투, 위르겐 클린스만 등)지난 2명의 외국인 감독을 돌아봤을 때 팀 내 자유로움 속에 기강을 세우되, 대표팀의 창의성 유지 및 원칙 확립을 위한 적임자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감독으로서의 성과에서도 외국인 감독 대비 뒤지지 않는다고 봤다. 홍 감독은 그간 K리그 정상에만 2번 오른 데 이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4강 진출, 2025년 클럽월드컵 진출 등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대표팀 감독으로서도 20세 이하 월드컵 8강 진출, 23세 이하 올림픽 동메달 등 성공 경험을 갖고 있다.


협회가 고집했던 외국인 감독은 왜 제외됐나

당초 외국인 감독 선임에 방점을 뒀던 협회가 결과적으로 국내 감독 카드를 꺼낸 건 △촉박한 대표팀 일정 △외국 지도자의 철학을 입힐 시간적 여유의 부족 △ 외국 지도자의 국내 체류 문제 등 때문이다. 이 총괄이사는 "당장 9월부터 월드컵3차 예선이 시작된 시점에 외국인 감독이 한국 대표 선수들을 파악하기에 시간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며 "각급 대표팀 연계 등에 필요한 충분한 (한국) 체류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규정에 없는 전력위원장 권한 위임

문제는 전력강화위원장 업무를 다른 분과위원장이나 총괄이사가 대신할 수 있는지 여부다. 우선 협회 조직도상 전력강화위원회, 기술발전위원회가 있는 이사회와 기술총괄이사는 별도 조직으로 분류돼 있다. 올해 4월 신설된 기술총괄이사직은 협회 내 대표팀 관련 업무와 기술 분야를 총괄 지휘하는 자리다. 신설 당시 협회도 "카타르 아시안컵 이후 기술분야 행정의 인적 쇄신과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취한 조치"라고 설명한 바 있듯 기술총괄이사 업무는 A대표팀 감독 선임과 전혀 관련이 없다.

기술발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협회 정관상 기술발전위원회는 "17세 이하(U17) 연령별 대표팀 운영에 대한 조언 및 자문" 등을 위해, 전력강화위원회는 "남녀 국가대표와 18세 이상(U18) 연령별 대표팀 운영에 대한 조언 및 자문"을 목적으로 설치됐다. 당초 2017년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현 전력강화위원회)를 신설한 것도 기술발전위원회에서 A대표팀 감독 선임 기능을 분리하기 위함이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협회 스스로 내부 조직간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전력강화위원회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반토막 난 전력위, 제대로 작동했나

뿐만 아니다. 당초 위원장 포함 10명으로 구성됐던 전력강화위원회는 정 전 위원장 사임 후 위원들마저 줄줄이 사퇴하면서 5명만 자리를 지켰다. 위원회가 반토막 난 것이다.

이 총괄이사는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위원회 5명의 동의만 얻었다고 해서 그 부분이 잘못됐느냐 아니냐는 내가 언급하기 어렵다"면서도 "협회 법무팀의 조언을 받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했다. 혹 그 부분으로 나에게 뭐라고 한다면 다시 법무팀에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정몽규 협회장도 지난 5일 충남 천안축구종합센터에서 열린 2024 대한축구협회 한마음 축구대회에서 "절차적 정당성보다 감독에게 필요한 덕목을 정의하는 게 우선"이라 강조했는데, 이 같은 문제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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