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도끼 들고 위협한 중국에 “14억 손해배상 내놔”

입력
2024.07.05 17:36
보트 손상, 무기·장비 파괴 등 재산 피해 금액
손가락 잘린 병사 등 인적 피해는 추후 산정
미국 미사일 철수 예정, 긴장 완화 수위 조절

필리핀이 지난달 남중국해에서 중국군 위협으로 물질적 피해를 입었다며 중국 정부에 억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다만 중국 측이 눈엣가시로 여겼던 미국 중거리 미사일은 자국에서 철수하기로 하면서 남중국해가 또 하나의 화약고가 되는 것을 피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5일 미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로미오 브라우너 필리핀군 참모총장은 전날 마닐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측에 6,000만 페소(약 14억1,500만 원) 손해 배상금 지급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배상액은) 중국 측이 파괴한 보트, 통신 장비, 무기 등 재산상 피해를 합산한 규모”라며 “이 밖에 중국 해안경비대가 압수한 총기 7정 반환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부상 병사 수술 비용 등 인적 피해 배상 금액은 추후 다시 산정해 요구한다는 방침도 확인했다.

이는 지난달 17일 남중국해 스플래틀리군도 세컨드토머스암초(중국명 난사군도 런아이자오암초)에서 중국군 공격으로 필리핀군이 피해를 입은 데 대한 대응이다. 당시 도끼, 칼, 총 등으로 무장한 중국 해안경비대가 필리핀 해군이 탄 보트와 충돌했다.

이들은 필리핀 병사들이 탄 고무보트를 칼로 찔러 구멍을 내고 M4소총 등 무기와 보급품을 빼앗았다.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한 필리핀 병사는 엄지손가락이 절단됐고 다수도 부상을 입었다.

필리핀의 보상 요구에 중국은 ‘정당한 대응’이라고 맞대응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정례 브리핑에서 배상금 지급 가능성 관련 기자들의 질문에 “중국 해안경비대는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라며 “필리핀이 불법으로 물자를 운반해 먼저 도발한 만큼 자신의 행동 결과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사실상의 거절 표시다.

다만 양국은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더 높아지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도 보였다. 필리핀 현지 매체 인콰이어러는 전날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일까지 일주일간 남중국해 해역에서 중국 선박 95척이 포착됐다”며 “이는 이전 일주일간 관측된 129척보다 26%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이 지난 2, 3일 필리핀과 양국 차관급 대화를 앞둔 상황이었던 터라 ‘도발 자제’에 나섰다고도 해석했다.

필리핀은 북부 루손섬에 배치한 미국 중거리 미사일 발사시스템 ‘중거리 화력 체계(MRC)’도 조만간 미국 본토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MRC는 지난 4~6월 남중국해에서 진행된 필리핀·미국 연례 합동 군사훈련 발리카탄과 살락닙에서 사용하기 위해 들여왔다.

필리핀은 구체적인 철수 이유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간 MRC 배치를 두고 중국이 “아시아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한다”거나 “필리핀은 자신이 저지른 불에 타 죽을 것”이라며 반발해 온 점을 감안할 때 중국과의 차관 회담 이후 필리핀군이 긴장 완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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