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이 4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키어 스타머 당대표가 총리직을 잇게 됐다. 14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끈 그의 철학은 "국가가 먼저, 당은 그다음"이다. 당의 외연을 중도로 확장했다는 평가다. 노동당 출신으로 중도 노선 '제3의 길'을 연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비견되는 대목이다.
1962년 영국 런던 외곽에서 태어난 스타머 신임 총리는 노동계급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공구 기술자, 어머니는 희소병을 앓던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 간호사였다. 둘 다 노동당의 열성 지지자였다. 키어라는 이름도 노동당 초대 당수인 키어 하디(1856~1915)에서 딴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공과금을 못 내 전화가 끊기기도 하고, 해외여행도 간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집안에서 대학에 들어간 것도 스타머 총리가 처음이었다. 그는 리즈대와 옥스퍼드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트로츠키 계열 잡지 '사회주의 대안'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1987년부터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널드의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를 고발했다 명예훼손으로 피소된 환경운동가들을 무료변호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2008년부터 5년간 잉글랜드·웨일스 왕립검찰청(CPS) 청장 등을 지내며 주류 엘리트 그룹에 들어갔다는 평가도 받았다.
정계 입문은 늦은 편이다. 52세 때인 2015년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2019년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제러미 코빈에 이어 2020년 4월 노동당 대표로 선출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그의 정치 경력은 비교적 늦게 시작됐지만, 노동당 내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스타머 총리는 진보 쪽에 가깝던 당을 중도로 끌어왔다. 노동당을 대표했던 에너지 국유화, 소득세율 인상, 대학등록금 폐지 등 주요 정책을 철회했다고 미국 CBS방송은 전했다.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기도 했다.
실용주의는 그의 강점으로 꼽힌다. 중도 성향 영국 싱크탱크 '레이버 투게더'를 운영했던 조시 사이먼스는 "(스타머 총리는) 거창한 이론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려 정책을 개발하는 실용주의를 믿는다"며 "그는 이념적 전제를 갖고 테이블에 앉지 않는다"고 WP에 말했다.
그의 실용적 면모는 노동당 재건의 비결로도 꼽히지만 당 내 일각에서는 기회주의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정치인으로서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중 인지도도 낮은 편이다.
무신론자인 스타머 총리는 유대인이자 NHS 산업보건 전문가로 일하는 변호사 출신 부인 빅토리아와 사이에 10대 자녀 2명을 두고 있다. 그는 총리가 되더라도 금요일에는 오후 6시가 지나면 가족과 저녁시간을 보내겠다고 한 바 있다.